라이프 my life/이런저런

[41/100 - 100개의 글쓰기] 나의 삶의 태도, 미련함

uchonsuyeon 2019. 7. 30. 0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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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릴 때는 늘 마른 체질이었다. 어느 정도였다면, 별명이 ‘소말리아’였다. 당시 기아에 시달리는 소말리아 상황이 tv에 많이 나왔다. 요즘도 볼 수 있는 월드비전의 아프리카 기아 관련 광고와 흡사하다. 나는 팔다리가 가는 편이라 사람들은 실제보다 5kg 정도 마르게 보곤 했다. 중 1 때, 수업 도중 화장실을 가다(신경성 대장증후군이었다) 살짝 현기증으로 기우뚱을 한 적이 있는데, 그 사건 이후로 반 아이들 모두가 ‘정말 연약한 아이’라고 여겼다. 스스로는 매우 건강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운동에서 달리기도 중간이었고 그 외 종목에서도 주로 중간 이하였다.

 ‘운동을 왜 잘하지 못하지?’라는 의문을 품게 된 것도 중 1 무렵이였다.  
 ‘이 세상에 노력으로 할 수 없는 게 많다면, 살고 싶지 않아!’라는 생각도 했다.

 나름 현명하게도 상황을 분석했다. 일단 나는 힘이 부족하고 달리기처럼 조금 타고나야 하는 건 힘드니까 근성으로 할 수 있는 종목을 찾았다. ‘오래 매달리기’라면 버티기만 해도 되니까 잘할 수 있을 듯했다.

 그래서 결과는? 반기록으로 1등을 남겼다. 이 작은 사건은 인생의 터닝 포인트 중 하나가 되었다. 오래 매달리기 하나 잘했을 뿐인데, 자신감을 얻어 그 후로 운동은 상급/특급을 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평균과 비교하자면 나는 특출난 구석이 없다. 그림 빼고. 사실 그림도 ‘특’ 출난 다고 말할 정도는 아니다. 어쩌다 보니 오래 그림을 그리는 것이지. 남동생은 어려서부터 ‘머리는 좋은데 조금만 노력하면 되는데 안 한다.’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초등학교 때는 공부를 안 해도 평균 90점대였고, 고등학교 때는 제법 좋은 학교에 들어가서 반 2등을 했다. 돌이켜보면 그게 쥐약이었다. 부모의 헛된 기대심리를 키우고 스스로에게는 부담감을 지게 된 계기였으니 말이다.
 반면에 나는 초등학교도, 중학교도, 고등학교도 평균 이하의 점수에서 시작했다. 그리고 성적도 천천히 올라가는 타입이었다. 내 삶에서 지름길은 없었다. 좌우명이 ‘언덕 위의 수레처럼’이라고 할 만큼 고되고 고되었다. 노력없이 쉽게 얻어지는 게 없는 삶이었다. 미련하게 산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요행을 모르고 살았다. 오늘 한시간 더 늘린 공부시간이 한 달 뒤에 조금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오는 걸 안다. (지금 돌이켜보면 두 시간 늘렸어야 했다. ㅎㅎ) 

 그때는 생각하면 다소 우울해지지만, 그 과정 덕분에 ‘체력’이나 ‘두뇌’는 부족해도 ‘지구력’은 좋다고 스스로 세뇌할 수 있었다. 이 지구력이 좋다는 말은 ‘끈기’가 있다는 말이다. 엄청난 무엇을 끈기 있게 해내면야 좋겠지만, 체력이 좋지 않으니 그저 소소히 오래도록 하는 특성이 있다. 이런 점은 취미, 공부, 일을 하는데도 적용 된다. 장기적으로 보고 하는 건 아니지만, 그저 꾸준히 오래도록 할 수 있는 자신감은 있다. 남편이 나의 모바일 게임 패턴을 보면서 하는 말이 ‘아직도 그거 해요? 참 오래도 한다’라는 말이다. 한번 잡으면 몇 달이고 오래 한다. 아무거나는 아니다 나에게 맞는 것일 때이다.  유튜브나 이 블로그 글쓰기도 그렇다. 꾸준히 하다 보면 죽기 전에는 전체가 100만 뷰는 되지 않겠는가? 아니면 100만 개의 글을 쓴다면 적어도 1 클릭으로 100만 뷰는 되겠지? 그런 마음으로 꾸준히 하고 있다. 

 스스로 미련하다고 느껴지는 부분도 있는데, 어떤 이는 대단하다고 얘기해주니 나쁘진 않은 것 같다. 나는 한 번에 멀리, 높이, 아름답게 뛰어가는 재주는 없으니 그저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설 뿐이다. 내가 나의 친구가 되어주어 응원하고 질책하면서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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