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my life/이런저런

헛글] 귀차니즘은 병일까?

uchonsuyeon 2019. 11. 18. 14:37

요즘 귀차니즘에 빠져 살고 있다.

나는 스스로 매우 게으르다고 생각한다. 남편도 이것에 동의한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내가 아주 부지런하다'라고 말한다. 그 간극이 매우 크다. 

나는 부지런하기도 하고 게으르기도 하다. 

좋아하는 일, 관심사에는 매우 부지런하다. 잠을 쪼개고 시간을 잘근잘근 쪼개서 사용할 만큼 부지런해진다. 반면 좋아하지 않는 일에서는 매우 게으르다. 미루고 미루다 마지못해 할 정도로 미룬다. 대게 이런 건 집안일이다. 집안일만 들여다보는 남편은 당연히 내가 '게으다'고 말한다. 

어제는 남편이 물었다.

'요리에 관심을 좀 두면 어때요?'

나는 답했다.

'관심을 둔 적이 있었지요.'

그러고서는 이틀이나 걸려 만든 육계장에 대해 설명해줬다. 고사리를 하루 불렸다가 다음날 여라가 지 재료들을 순서대로 넣고 몇 시간에 걸쳐서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짧게 붙여 말했다. 호주에 머문 1년간은 정말 요리를 제대로 해 먹었다. 향수병이 무서워서 음식만 잘해 먹으면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요리책 한 권에 있는 요리는 거의 다 해 먹었다. 깍두기와 배추김치도 담가먹을 정도였다. 이건 입 짧은 나 자신의 문제에서 비롯되긴 한다. 같은 음식 두 번 못 먹고, 입안에 감도는 그 '맛'을 재현해내도록 밀어붙이는 까탈스러운 '장인정신'이 1년간 나를 지배했었다. 한국에 돌아가면 요리를 배워 음식점을 차리겠다는 작은 소망도 품었더랬다. 한국에서 자취를 시작해서도 요리는 열심히 했었고, 신혼초까지만 하더라도 그럭저럭 음식을 해 먹었다. 육아와 회사일에 지쳐 차츰 요리하는 횟수가 줄다 보니 점점 흥미도 잃어서 지금은 요리하는 게 매우 귀찮다. 

흥미를 잃어서 귀찮다. 

귀차니즘은 나같은 사람에게만 있는 걸까? 매일 청소하고 빨래하고 집안일을 깔끔히 잘하는 사람도 있다. 그 사람들은 하고 싶어서 한다기보다는 그렇게 놔두는 걸 못 보니까 그러는지도 모르겠다. 집이 더러운 꼴을 못 보는 사람들이 있다. 아. 내 여동생도 그렇다. 티셔츠와 청바지도 다려 입는다. 나는 그게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다림질 귀찮아서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는 나에겐 도저히 납득되지 않는 생활방식이다. 
 이렇게 집안일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거라고 남편에게 말하니, 좋아서 하는 사람이 어딨냐고 말한다. 그럼 왜 그렇게 잘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나의 생각과는 다른 사람들이라 잘 모르겠다. 

다만 짐작컨데, 남편의 잔소리와 너저분한 집안 상태가 너무 신경 쓰이다 보니 나도 모르게 집을 청소하게 전보다는 자주 청소하게 되었다. 그리고 요령도 늘어서 예전 청소보다는 더 빨리 마무리를 짓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어떨 때는 '깨끗한 상태'가 좋아서 청소를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그 깨끗한 상태가 비록 한 시간은 유지될까 싶지만, 큰 딸아이를 살살 꼬셔서 같이 청소할 때도 있다. 청소를 하다 문득 나 자신을 보고 깜짝 놀랐었다. 

'왜 이래 나답지 않게?'

지금 집안은 혼돈의 중심을 걷고 있는 지경인데, 예전 같으면 크게 신경 안 쓰겠건만, 자꾸만 청소와 정리가 하고 싶어 진다. 일을 하고 나중에 정리하려고 마음먹었는데, 그렇다. 청소와 정리하다 보면 하루가 다 갈 때가 있어 미뤄뒀는데, 살며시 그런 욕구가 생기곤 한다. 

게으긴 게으른데, 아무래도 '깨끗한 상태'의 즐거움을 경험하고 보니 자꾸만 그쪽으로 마음과 몸이 흐르나 보다. 

아, 정체성이 흔들리는 것같다. 아니면 나도 모르게 게으름이 자연 치유되고 있는 걸까. 뭐, 애 있는 집은 마냥 게으르기는 힘들기 때문에 극한 상황을 겪다 보니 덜 극한 상황에서는 여유가 생기는지도 모르겠다. 아아, 청소 정리하고 싶은 욕구를 누르고 일이나 하러 가야지. 

참 일하는건 또 좋아하는 편이라..(좋아? 좋지..;;) 이건 또 귀찮지 않아.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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