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my life/이런저런

쏟아버린 커피 한 잔

uchonsuyeon 2019. 12. 3. 19:25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오는 길은 무척이나 바람이 차갑게 느껴졌다. 완전한 겨울이 되어가는가 보다. 이런 날은 뜨끈한 국물이나 뜨거운 커피가 생각난다. 11월 한 달은 생활비를 많이 절약했었다. 먹고 싶어도 마시고 싶어도 그 값어치를 생각해서 지출비용을 최소화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이런 날은 3,500원의 값어치는 훨씬 웃도는 따뜻한 아메리카노가 당긴다. 늘 같은 값이지만, 그날의 분위기에 따라 느껴지는 값어치가 달라진다. 오늘은 대략 만원 어치의 느낌이다. 
 새로 생긴 커피숍은 생길 때의 걱정과는 다르게 자리를 잘 잡고 있다. 우선 매장 규모도 적당히 크고, 아늑한 노란빛의 색감과 하얀벽에 꽂힌 책들이 어우러져 분위기가 제법 좋다. 에그타르트 같은 맛있는 베이커리도 그 분위기에 한몫한다. 에그타르타까지 사면 오늘은 월초 치고는 너무 사치하는 느낌이라 가볍게 묵직한 맛의 커피를 골라 받아 들고 집으로 향했다. 이런 추운 날씨에 뜨거운 커피가 손을 기분 좋게 해 준다. 어떤 환경에서도, 이런 날씨에서도 뜨거운 건 못 먹기 때문에 맛있을 거라는 기대만 가지고 집에 도착했다. 입이 맞닿아지는 작은 구멍만 열어둔 채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어서어서 식어서 내 마음을 즐겁게 해 주렴! 

 요즘 캘리그래피 자격증을 준비하고 있는데, 포트폴리오에 넣어야할 것들을 지난 주말에 버렸다. 너무 생각 없이 버렸는데, 버리고 나니 필요한 것들이라 다시 모포를 깔고 붓 등 글씨를 쓰기 위한 재료들을 책상 위에 펼쳐 들었다. 자기 조금 좁다는 생각에 손을 들어 책상 위의 물건을 옆으로 옮겼다. 그 순간 내가 쳐낸 것은 아까 그 커피였다. 커피는 슬로모션을 보는 듯 우아하게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며 책상과 소파 그 사이 어딘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옆으로 떨어졌고 뚜껑이 열려 뜨거운 커피가 콸콸 흘러나왔다. 그 순간 커피를 다시 담아야 하는가 라는 바보 같은 생각이 들었다. 작은 희망을 갖고 커피 컵을 빨리 들어 올렸다. 약간의 행운인지 반모 금 정도의 커피가 남아 있었다. 또 어디론가 사라질까봐 그 반모 금을 얼른 마셨다. 그리고 수건을 가져다 '미친 나'라고 외치며 바닥에 쏟아져 있는 커피를 열심히 훔쳐냈다. 수건 한가득 커피가 고였다. 다시 나가서 사도 될듯했지만, 미친 나에게 벌을 주어야 했다. 대신 싸구려 믹스커피를 두어 잔 허용했다. 

 오전에 있던 이 일은 하루 종일 커피 생각을 하게 했다. 나의 커피용량은 1일 믹스커피 한잔이면 충분한데, 하루 종일 두 잔은 넘게 마셨다. 그러고서도 아이들 하원을 시키면서도 내내 커피 생각을 했다. 아까 그 커피숍이 점점 가까워졌다. 고민하다 그 앞에 있는 식품가게에서 식혜 한 통을 구입했다. 식혜 한통의 값은 커피 두 잔 값이다. 그 생각을 하며 커피숍을 떠나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식혜를 두 컵이나 마셨지만  여전히 커피 생각이 난다. 아마 내일은 돌아오는 길에 꼭 커피를 사 먹을 것 같다. 그러지 않는다면 또 하루가 커피 생각으로 가득 차지 않겠는가. 

 그냥 사먹어라고 누군가 말할 수 있겠지만, 그건 쉽지 않은 일이다. 내가 나에게 허락한 건 한 잔의 커피였으니까 말이다. 그건 작은 신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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