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다는 참으로 좋은 것이다. 서로의 이야기에 귀기울여 주다 보면 친해지는 느낌도 들고 스트레스도 상당히 풀린다. 회사건 사생활이건 자기 사생활에 대해 수다를 떨 수 있느냐 아니냐에 따라 친분이 결정 난다. 나는 원래가 상당히 수다스러운 사람이다. 거짓말을 싫어했기에, 모든 것을 솔직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모든 걸 공개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러다 보니 쓸데없는 나의 모든 일상을 주절대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어느새 칼날이 되어 나에게 돌아왔다. ‘소문’이 돈다. 나에게 대해서 내 주변인들에 대해서 말이다. 그런 경험이 몇 번 있다 보니 사람에 대해서 점점 선을 긋게 되었다. 이 사람은 이 선까지, 저 사람은 이 선은 넘어도 된다. 이렇게 말이다.
그리고 점점 수다를 떨고 나면 죄책감이 일더라. 내가 한 말이 누군가에게 비수가 될지도 모르는데 잘 모르는 내용을 말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섣부른 결론에 지적을 많이 받았다. 설령 그것이 옳은 것일지라도 충분한 근거없이 하는 말은 불필요한 섣부른 말일 뿐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선택의 기로에 선다. 나는 경쾌하고 발랄한 사람이 될 것이냐. 나는 진중하고 차분한 사람이 될 것이냐. 물론 굳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할 필요는 없지만, 어느 정도 입장 정리는 필요하다. 나이가 들수록 대화 가능한 연령의 폭이 는다.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나보다 훨씬 어린 쪽과도 대화 나눌 기회가 생긴다.
나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나는 어떤 선택이라기보다 ‘말수를 줄이는 쪽’으로 결정했다. 말을 많이 할수록 실수가 잦기마련이다. 예전엔 내가 한 말에 대해 잘 기억했지만, 지금은 말을 해놓고도 잊어버릴 나이다. 그러니 말수를 줄이는 게 좋지 않겠는가. 그리고 쓸데없는 수다가 줄어들고 있다. 수다를 하기 위해 대화 주제를 생각하고 상대방의 눈치를 보는 것보다는 혼자 멍 때리는 편이 낫더라. 물론 그렇다고 수다를 다 줄이진 않는다. 잘 맞는 사람과 꼭 맞는 자리에서 적당한 선을 지키며 수다를 떤다. 상대방도 나도 상처 받지 않는 정도의 선이다.
같이 수다를 떨고나서 기분도 좋고 행복의 밀도가 높은 사람들이 있다. 서로가 서로를 위해 시간을 기꺼이 내고 좋은 대화의 주제로 같이 성장하는 기분의 사람들이 있다. 나는 이제 그런 자리가 좋다. 그리고 그 자리에 걸맞는 사람이 되고 싶다. 독서와 침묵 그리고 경청이 그 자리에 가는 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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