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my life/이런저런

동년배의 죽음

uchonsuyeon 2020. 5. 21.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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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죽음에 서글픈 마음을 갖고 씁쓸한 모습을 보여주신 아버지를 보며, 나에게도 그런 일이 생기면 같은 표정을 짓겠구나라고 생각했다. 

가깝게 지내던 언니가 갑자기 죽었을 때는 내가 한국에 없어서 마냥 슬퍼하기만 했다. 서글픈 느낌이라기보다는 그저 아픈 마음만 가득했다. 그때 내 나이는 서른 초반이어서, 그리고 한국에서 있지 않아서 거짓말 같은 느낌이 강했다. 

며칠 전 알던 오빠 한분이 돌아가셨다. 나와는 두 살 차이로 남편과 나이가 같다. 갑작스레 병이 걸려서 생을 마감했고, 그분에게는 아이가 둘이 있다. 여러 상황들에 감정이입이 되어 장례식장에서 오빠 어머니의 손을 부여잡고 눈물을 쏟아냈다. 목이 메어와서 위로의 말을 건네기도 쉽지 않았다. 문상객이 올 때마다 어머님은 오열하셨고, 아버님은 슬픔을 억누른 채 담담히 객을 맡으셨다. 그런 모습들이 하나하나가 마음 아팠다. 특히나 항상 밝고 해맑은 미소를 보여주던 오빠의 얼굴이 장례식장 어디에 눈을 두던 오버랩되어 더 슬펐다. 오빠의 작은 어머니란 분과 오빠에 대한 대화를 하며 한상에서 밥을 먹었다. 중환자실에 핸드폰이 반입이 불가능해서 병원에 있은 후로 친구들에게 연락이 어려워 죽은 후에야 연락이 가능했다는 이야기 등을 들을 수 있었다. 안타까운 마음에 밥알이 모래알 같았다. 육개장 국물과 후다닥 밥을 해치우고 몇 마디 건넨 후, 후다닥 장례식장을 나왔다. 신발을 다 신고 문 앞을 나설 때까지 오빠의 부모님은 나를 기다려주시고 배웅해주셨다. 와줘서 정말 고맙다는 말에 또 울컥했다. 

보통 장례식장은 떠들썩하고 그러므로써 슬픔을 잊는다는데, 오빠의 장례식장은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사람이 적은 월요일 오전, 서울과 먼 곳에 있는 젊은 남자의 장례식장은 객이 적어 삭막했다. 그리고 그 죽음이 어이없고 안타까움에 왁자지껄할 수도 없었다. 80 넘어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장례식장과는 비교할 수 없이 분위기가 달랐다.  

아는 사람의 죽음이라 그런지, 남편 동료가 얼마전에 교통사고로 아쉽게 돌아가셨다는 말을 듣던 때와는 너무 달랐다. 한없이 마음이 가라앉고 그 처지가 슬프다. 

내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그렇게 먼저 유명을 달리하는 사람들이 점점 생기겠지. 그때마다 나는 그 사람의 삶과 나의 관계를 떠올리며 이렇게 글이라도 하나씩 남기련다. 나름의 추모이고, 먼 훗날 이 글을 들여다보며 다시 한번 추모하겠지.

토토 오빠. 양현준 오빠.
하나님의 품 안에서 편안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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