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키우는 게 아니면 그 어떤 것도 잡초다'
남편의 명언이다. 하여, 생물이라면 관찰하고 어여삐 여기던 마음을 접고 불필요한 풀들을 뽑아내야 한다. 모종도 심지 않는 밭은 벌써 작은 잡초들로 한가득이다. 뽑아도 뽑아도 어찌나 많은지, 하루 만에 자라나는 녀석들인가 싶다.
예전 어떤 그림짤에서 먹는 식물과 잡초의 뿌리 비교를 본 적이 있다. 잡초들의 깊고 넓은 뿌리 그림에 혀를 내둘렀는데, 그 실상을 보고 나면 온몸으로 진저리 치게 된다. 그대로 두면 먹는 식물들의 영양분을 뽑아가 잘 자라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보지않으면 모른다. 비료가 있고 없음의 차이를, 잡초가 있고 없음의 차이를 말이다. 비료를 주지 않은 옥수수 두 뿌리의 옥수숫대에서 결국 옥수수를 뽑아 먹지 못했다는 지난여름의 슬픈 경험을 떠올려본다. 자리도 한참 차지하는데, 하나도 못 뽑아먹다니, 이 모종값도 못한 녀석들.
잡초를 뽑아보면 여러가지 생각들이 든다. 같은 풀떼기임에도 어여뻐서 꽃으로 가꿔지는 녀석도 있고(밭끝에 피어나는 달맞이꽃을 떡잎부터 이뻐서 그냥 두다가 꽃까지 보게 됐다), 먹으면 맛있다 하여 식탁 위에 오르는 녀석도 있다. 이렇게 사람의 쓰임에 따라 잡초의 기준이 달라진다. 우리 밭에 많이 나는 고들빼기도 그렇다. 나는 해먹을 줄도 모르고, 그것과 비슷한 잡초가 한 가지 더 있는 관계로 그냥 둘 다 뽑아버리고 있다. 뒷집 아주머니가 오셔서 고들빼기를 캐가셨었는데, 아는 자에겐 음식이고 나 같은 자에겐 잡초가 된다.
그리고 잡초가 생명력이 강하다고 하지 않는가. 잡초같은 삶과 인생이 어떤 자리냐에 따라서는 매우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밭이 아니라, 길가나 산에서라면 잡초 같은 대단한 존재가 없다. 그 넓고 깊은 뿌리는 초장에 왕창 뽑아내지 않으면 또 자라니까. 그리고 그 깊은 뿌리까지 다 뽑아내기가 여간 어렵다는 점도 말이다.
잡초를 캐다보니, 그런 생각이 든다. 잡초 같은 인생은 대단한 칭찬 아니냐? 뽑으면 쏙 뽑히는 모종 시끼들하고 다르게 아주 정성을 다 해서 뽑아야만 뽑힌다. 아, 또 개중에는 가시까지 갖고 있어서 근처도 못 가는 애들도 있다. 꽃 이쁘다고 줄기 자르려다 가시에 쓸렸던 작년이 또 생각나는 고로.
그래서 결론은 집지으면 주차장과 집 앞까지는 시멘트다. 나는 싸움하기를 포기했다. 지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건 무리한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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