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my life/매주하는 주말농장여행

양평, 눈이 지나간 자리, 장작 그리고 비닐 하우스

uchonsuyeon 2021. 2. 7.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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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했던 날씨 덕분에 다시 양평에 가겠다는 마음을 먹고 토요일 이른 시간 양평으로 출발했다. 제법 서울의 날씨가 따뜻해진 탓에, 눈이 왔음에도 어느새 흔적 찾기가 어려웠는데, 양평에 들어서자마자 눈이 보인다. 얼어붙었던 강 위로 눈이 바람에 쓸려지나 간 자리가 보였다. 세미원, 두물머리부터 이런 모습이 알래스카 같아 신기했다. 

도착 예정시간이 12시였는데, 조금 늦게가고 싶었지만 주식 팔아 산 장작 때문에 서둘러 갔다. 주식판 돈이 주식에서가 아니라 현실에서 활활 타오르게 되었다. 

커피를 내려주면 장작 정리하는 걸 돕겠다고 했건만 남편이 거절했다. 나는 믹스커피 2봉을 탄 커피잔을 쥐어주고 놀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엄마를 쉬게 해주지 않는다. 땅이 얼어 배수가 되지 않은 탓에 눈이 녹아 바닥을 흥건하게 만들었다. 그걸 아이들이 놓칠 리가 없지. 지난번 큰 아이가 차에서 토를 한 탓에 옷을 넉넉하게 3벌 그리고 양말은 4켤레쯤 가져왔건만, 밤이 되기 전에 여분이 다 떨어지는 불상사가 생겼다. 결국 다음날 갈 때는 내복 차림으로 올라왔다. ㅎㅎ 

열심히 장작을 쌓는데 앞뒷집분들이 와서 장작에 대해 물어본다. 서로 사야겠다는 말을 중얼거리며 지나가신다. ㅎㅎ 집이 몇개 없다 보니 차가 한대 드나들어도 유심히 보게 된다. 허허 농막 주변으로 장작들을 쌓아뒀는데, 배가 부르다. 역시 가상의 화폐나 다름없는 은행돈보다 이런 현물이 더 보기 좋다. 

지난번에 도착한 화이어 핏의 시연이 젖은 장작으로 망해서 남은 장작을 비닐하우스에 널어 뒀었다. 지난번처럼 바로 숯으로 변할까 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잘 탔다. 마른 장작의 감사함이 밀려들어온다. 응당 돈 주면 구해지던 마른 장작의 고마움이 느껴진다. 남편이 장작을 쌓아야 했으므로(2톤이나 되었다) 내가 '남편이 산' 장어를 굽기로 했다. 저 화이어 핏과 숯불구이통 가운데에 서서 양쪽에서 나는 연기로 같이 훈제가 되어갈 즈음 맛있는 장어가 완성되었다. 숯불 장어는 진리로 새. 같이 보내 진 생강과 같이 먹으니 정말 꿀맛이다. 꼬리는 내가!!! 

해가 점점 길어지고 있다. 지난 달 12월에 5시 10분에 지더니, 6시가 넘어서도 하늘이 밝았다. 참 기쁘다. 햇빛을 듬뿍 받으며 나의 꽃들이 자랄 테니까. 여기저기 겨울에 심어둔 튤립과 크로커스 그리고 작약들이 돋아나고 있다. 겨울을 이겨낸다는 그 특별함을 고스란히 느끼고 있다. 이제 땅을 계약했던 날로 1년이 넘어간다. 서울에서 태어나 인천에서 자란 도시 사람에게 땅에서의 하루하루는 무척 특별한다. 방학마다 찾던 시골생활의 몇 배나 되는 큰 만족감을 느끼고 있다. 

얼어붙어 배수가 되지 않던 땅이 다음 날 얼추 말라있던 모습에서도 그 변화와 차이를 느낀다. 서울의 시멘트 바닥은 늘 건조하게 사람발길을 가볍게 만들지만, 축축한 땅은 아이들에게 함정이 되기도 하고 지저분한 흙길 모양을 만들기도 하는 등 다양한 변화를 보여준다. 땅이 살아있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 날은 아침부터 안개가 자욱해서 우리땅 끝부분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나보다 일찍 일어나서 바깥구경을 한 남편 말이, 그때는 더 심했다고 한다.

영화의 한장면이 생각난다. 외계인들에게 공격당한 사람들이 차하나를 타고 도망친다. 그러나 탄환도 차의 기름도 거의 다 떨어지게 되고, 그들은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그때 그 사람들이 있던 곳의 안개가 거치며, 구조하기 위해 군인들이 나타나며 영화가 끝이 난다. 처음 이런 안개를 봤을 때는 그 생각이 나서 조금은 공포스러웠다. 지금은 이 차분한 분위기가 제법 좋다. 

가을로 넘어가던 분위기와 다르게 조금은 파릇한 감성이 돋는 봄같은 겨울의 느낌이다. 나뭇가지 끝에서 싹이 트려고 조금씩 튀어나오고 있다. 어제도 한번 둘 어보 았지만, 때때로 땅의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작은 변화들을 살펴보고 있다. 내 하루의 큰 기쁨이다. 이주하고 싶은 근원이기도 하다. 

비닐하우스는 반원형이 더 비싸다더라. 모양이 예뻐서 이 집모양의 비닐하우스를 세웠다. 그런데 반원형처럼 짱짱하게 비닐이 당겨지지 않아서인지 눈에 눌려서 인지 비닐이 상당히 늘어져 있다.  남편이 따로 사다 온 끈으로 중간중간을 당겨서 벽돌로 끝을 잡아두었다. 이러기 전까지 바람에 미친 듯이 흩날려서 소란스러웠는데, 다소 조용해질 수 있었다. 시골에서 주로 사용하는 것들은 다 이유가 있다. 할머니 털 장화 같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처음엔 예쁘고 낭만적인 시골을 꿈꾸며 망상에 빠진 곤 했는데, 일 년이 다되어가니 점차 현실로 나오고 있다. 원형 비닐하우스 만들걸. ㅎㅎ 

어쨌든 비닐하우스 만들기는 잘된 선택이였다. 벌써 난로 없이도 저녁까지도 충분히 따뜻하다. 이안에서 그림도 그리고 휴식도 취한다. 아이들은 종이상자 안에 매트를 깔고 문을 조각내 집 놀이를 한다. 바닥에 매트까지 까니 놀기 참 좋다. 날씨가 따뜻해져서 밖에서 노는 것도 곧잘 하니 부모로서 매우 흡족하다. 

지난밤 남겨둔 고등어의 머리는 고양이들이 다 뜯어먹어 흔적도 남지 않았고, 아이들은 옷을 열심히 더럽혀가며 흙놀이를 하는 그 순간순간들이 매우 기껍다. 

내년쯤에는 대지로 전환하고 작은 집을 지을까한다. 서울 집을 팔지는 않을 거라 작은 집을 지어서 주말주택으로 활용하다 노후를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청소하기 귀찮은 나에게 집이 크면 너무 힘들듯하다. 난방비도 많이 들고. 지금보다 한 10살만 어렸으면 직접 지었을까나. 땅 살 때도 고민을 많이 한 만큼 집 짓는 것에 대한 고민도 크다. 지금 농막은 고민하다가 다소 급하게 결정해서 그런지 부족한 점이 많다. 조금 더 들일걸 하는 생각도 든다. 천천하지만 빠르게(!?!?!?!) 고민해보고 결정해야지. 아니, 어쩌면 내년이 아니라 한참 뒤에나 지을지도 모르겠지만. ㅎㅎ 후회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서 짓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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