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 주말엔 비가 폭탄처럼 내렸다. 내리다 말다를 반복했지만, 한번 내리기 시작하면 스콜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시야를 가리며 하얗게 내렸다. 비가 오던 말던 고기는 먹을라고 한 더미를 샀기 때문에 비가 내리고 나서 잠잠해지자 기상청 날씨도 확인해보고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음식은 내가 해야 제맛인지라 내가 굽기 시작했다. (정말 맛있다는 게 아니라 원래 체감상 그런 거다 ㅎㅎ)
다 굽다가 목살 마지막을 굽고 있는데 반쯤 굽자마자 비가 퍼붓기 시작했다. 상에 차려진 그릇과 컵들에 비가 들이치기 시작했다. 남편은 고기를 포기하자고 했지만, 어디 고기를! 우비를 가져와 입고 열심히 구웠다.
비가 좀 잦아드는데 새로 이사왔다고 인사를 하셨던 집에서 차를 타고 내려온다. 살짝 시선을 피하는데, 굳이 굳이 굳이 창문을 내려 나를 불러 인사하신다. 하하 정말.. 고기에 미친 사람 같겠다.
남편과는 우산을 뜨고 집게로 고기를 집어 한입씩 번갈아 먹었다. 이런 기억도 하나의 추억으로 남겠지. 예전엔 지나고 보면 추억인데, 요즘은 무언가를 하며 '추억으로 남겠다'라는 말을 한다. 마일리지 적립처럼 적어도 1년에 하나쯤의 추억을 생성하고 있다. ㅎㅎ
농장에서 가장 반가운 것은 비고 가장 무서운 것도 비다. 비가 내리고나면 작물과 함께 잡초도 무성하게 자라기 때문이다. 매일 지키고 있는 게 아닌지라 맛있게 먹을 타임을 놓치는 농장물도 수두룩하다. 오이는 노각화 되어 가고 있고 애호박은 어른 호박으로 먹어줘야 한다.
지난주 열심히 제거했던 잡초는 그 수많은 다시 자라 있다. 뽑아서 모아뒀는데 거기에 뿌리내리고 살아있는 잡초를 보면 기함한다. 하. 잡초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야. 작물을 키우다 보면 인생사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세상과 멀리 있는 것 같아도 모든 이치는 통한다는 말이 공감한다. 지식이 아니라 지혜가 필요하다는 말도. 작물을 키우면서 배운다. 진득 깊이 있는 삶에 대해 고민했어야 하는데, 너무 내달리기만 했다. 앞서가고 오래가는 게 무조건 최고인 줄 알았지.
땅이 주는 매력과 이치를 들여다보며 나 자신을 무너뜨리고 다시 세우기를 반복하고 있다. 아니 아직 세우는 것도 안되는 무지렁이다.
그리고 아무리 아껴도 내 뜰안에 두면 안되는 것들이 있다. 수레국화처럼 무지렁이처럼 시야를 가리는 녀석들이 그렇다. 정성스레 가꾸었던 꽃밭이 수레국화로 뒤덮여 제대로 크지 못했다. 몇 줄을 고민하다 결국 뽑아냈다. 뽑아낸 자리에 작년부터 고이 키웠던 식물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 이리 속 시원한걸. 과함은 부족한 만 못하다 했다. 또 겸사겸사 식물원에 가서 두어 종의 식물을 사다 심었다.
아니다 싶으면 바로 접어야한다. 그 사이 장미는 햇볕을 잘 못 받아 부실해졌다. 눈이 쨍하게 아픈 색을 자랑하던 장미가 저리 파리해졌다.
정원은 세번은 갈아엎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시작하길 잘했지. 옆에 흙 돋우며 1미터는 넓어진다고 하니, 그렇게 되면 오솔길처럼 걸을 수 있는 정원을 만들고 싶다. 으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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