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관련 책자를 보거나 걷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들을 들으면 '걷기 예찬 일색'입니다. 뭐 걷는 게 걷는 거고 뛰는 게 뛰는 거지라는 생각이라 큰 호응을 할 수 없습니다만, 요 근래 우을 감을 떨쳐내고 건강을 상승시키기 위해 걷기를 시작하면서 생각이 조금은 달라졌습니다.
어려서부터 등산은 더럽게 싫어해도 걷가나 뛰는 건 다리가 아플 정도로 열심히 했는데, 왜 지금은 이리도 달라졌을까요. 모르겠네. 왜지? 어느 계기가 있다기보다 회사생활을 너무 열심히 하다 보니 그 외에 쓸 힘이 줄어든 것도 같네요. 운동을 하기 위해 헬스장에 가야 하는 느낌적인 느낌의 사회라 더 그런지도 모르겠어요.
하긴 생각해보면 호주에 살때 놀란 점이 사람들이 아침저녁 그리고 낮 할 거 없이 거리를 뛰어다니는 거죠. 헬스장도 적고요. 그냥 뜁니다. 도시, 시골 할 거 없이 뜁니다. 빌딩 숲이 우거진 이른 아침에 뛰어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대리만족도 느껴지고 좋긴 하드라고요. 우리나라에도 보면 거리를 뛰어다니는 사람들이 대부분 외국인입니다. 한국인들은 공원 같은 곳에서만 뛰죠.
저도 곧 뛰긴 할 겁니다. (아마도)
일단은 애 둘은 학교와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면서 계속 영역 확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냥 가면 재미없잖아요? 목표지점에 있을 커피숍들을 생각하며, 없다면 나타날 때까지 걸으며 새로운 길들을 개척하고 있지요. 히죽, 타인이 보면 얼마나 부러울까도 생각이 드네요. 다들 출근한 시간에 빠르게 걷다가 커피 한잔 사다 쭈룹거리며 여유롭게 집에 오는 모습 말이죠. 지금 생각해보니 꾀 여유로운 아줌마잖아요? 집에 오면 집안일이 한가득이란 건 다들 모를 테니 말이에요.
오늘 아침엔 눈이 내려서 망원한강공원에 있는 스타벅스에 가려던 유혹이 너무 컸어요. 9시 즈음 가면 사람도 적고 좋은 자리에 앉아 멍 때리기 참 좋거든요. 내일이나 내일모레 아는 분과 거기에서 만나기로 했어서 반대방향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변덕스럽고 싫증을 잘 내는 (안 그런 것 같지만 그런 면이 많아요.) 저는 이 걷기가 금세 싫증 나지 않도록 스스로를 잘 달래야 합니다. 사실 오늘은 집에서 스태퍼나 밟으려고 했어요. 머리도 안 감았고, 그런데 걷기는 비타민 같이 어느새 조금 친숙해졌나 봐요. 모자를 얼굴 앞까지 당겨 쓰고 지퍼를 올리니 제법 걸을 만하더라고요. 그리고 눈 오는 날이 되려 안 춥잖아요?
말이 나온 김에 하자면, 걷기는 참 비타민 같아요. 먹을 땐 모르는데 안먹으면 티가 나는 그런 존재 말이지요. 걷는다고 정신이나 육체가 바로 좋아지는 건 아닌데, 안 걷자고 하니까 그 상큼한 맛도 걸리고 찌뿌둥 해지는 그 무언가(생각, 감정, 육체적 피로)가 걸리더라고요.
그리고 확실히 좋아졌다고 생각하는 점도 있어요. 아침마다 뭉그적거려서 속을 태우는 큰 딸에게 큰소리로 샤우팅을 해줬는데도 기분이 아주 나쁘진 않더라고요. 화를 내면 그 자체로 셀프속상했는데, 안 그래서 표정관리가 어려웠어요. 계속 화난 척했어야 하는데. 그걸 아는지 눈이 온다고 큰 따님은 헤실거리며 학교에 갔네요. 지각은 확정이었고요. 속 터지는 건 엄마뿐이지요. 뭐 아직 초등학생 1학년이니 그러려니 해야죠. 허허허 허
모델 한혜진님이 운동에 집착하는 이유가 세상에 자기 마음대로 되는 건 몸 관리뿐이라고 하더라고요. 맞아요. 감정도 내면도 외부의 충격에 무너져 내릴 수 있지만, 잘 잡힌 근육은 쉽게 무너지지 않죠. 육체가 건강해지면 딴딴한 그릇 안의 감정과 생각과 내면 그 모든 것도 잘 견뎌내 지고요.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노래가 있는데, 가사가 참 좋다고 생각해요. 철딱서리가 없는 게 어때서, 나이 생각하지 않고 도전하는 게 어때서~ 이럼서 내년 마라톤도 준비하고 있어요. 아 물론 무리하지 않고 5km부터요. 이 말을 듣고 운동 잘하는 친구가 30분이면 뛰겠다고 하던데, 그건 너고요. 나는 좀 느긋하게요. 어찌 되었든 결승선에는 가도록요. 그런 마음으로 가고 있습니다. 모든 조급하지 않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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