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에 큰 딸이라 그런지, 부모님은 내가 알아서 잘한다고 생각하셨는지, 학교생활 등에 크게 관여 안 하셨다. 좋게 말하면 믿어주시는 거고, 나쁘게 말하면 무관심이었다. 나중에 내가 다 커서야 속마음을 말씀해주셨는데, 알아서 잘하길래 크게 신경 안 쓰셨다는 것이다. 어쨌건,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스스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걸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나때부터는 1가구 1자녀 정책이 있던 때라 내 친구들은 많게는 2자녀 적게는 1자녀가 제법 있었다. 그렇다 보니 그 친구들은 성적이 조금만 올라도 부모님의 선물이나 칭찬을 받았고 나는 그런 점에서 우리 부모님께 아쉬움이 컸다. 성적이 크게 올라도 칭찬 한두 마디 들었던 게 다였다.
중학교때였다. 그때 나는 용돈을 월 2만 원 받았는데, 성적 오르는 걸 조건으로 만 원짜리 붓을 하나 사달라고 엄마와 협상을 했다. 소박한 서민의 맏딸이라 부모님께 좀처럼 무엇을 사달라고 한 적이 없었다. 옷도 엄마가 사주시는 그대로 입었고 먹고 싶은 것이 있어도 참았다. 그때 그 제안은 정말 몇 번을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용기 내어 요청했던 것이다. 다행히 엄마는 거래를 수락했고, 나는 그 작은 목표를 가지고 또 열심히 공부했다. 목표했던 성적이 나와서 엄마는 만원을 주셨다. 당시 인천에서 가장 핫했던 곳은 동인천역 부근이었다. (지금은 상권이 부평으로 넘어가버렸다.) 가끔 미술 용품점에 놀러 가서, 구경만 했던 아름답게 길게 뻗은 붓을 집어 들고 기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다. 만원이나 하던 붓은 집에서도 미술반에서도 열심히 사용했다. 아직도 그 붓이 주던 손의 터치감이 생각난다. 그 붓으로 그림을 그리면 색도 선도 아름답게 나왔다.
그런데 기쁜 마음은 다음 용돈을 받기 전까지였다. 엄마는 용돈을 ‘만원’만 주셨다. 그 이유에 대해 반문하자, 만원으로는 붓을 샀지 않냐고 하셨다. 나는 말문이 막혀서 항변하지도 않고 그대로 입을 닫았다. 너무 치사하게 느껴졌다. 초등학교 때 신문배달을 지원했을 만큼 나는 돈에 대해 민감했다. 그리고 돈의 사용이나 거래에 대해서도 민감한 아이였다. 그런데 엄마는 이 민감한 부분을 건드렸다. 그건 돈의 문제만 국한되지 않는다. 약속의 문제다. 가장 믿음을 갖고 있어야 할 부모에게 배신감을 느낀 것이다.
나는 그 후로 부모님의 약속이나 거래에 대해 불신을 가지고 있다. 나에게 칭찬이 인색했고 약속을 어겼던 부모님에게서 자란 나는 두가지 특징을 갖게 되었다. 첫 번째는 ‘셀프 칭찬’이고, 두 번째는 ‘부모 하고도 돈거래는 믿지 말자’라는 것이다. 돈거래는 믿지 말자라는 건 ‘차라리 그냥 주지, 빌려주지는 말자’라는 의미다. 이런 생각은 남편도 비슷한 기억과 유대감을 갖고 있다. 시어머님이 남편과 한 약속을 어겨서 홧김에 집안 마당에 있는 짚더미에 불을 내어 집이 다 타버릴 뻔한 적이 있단다. 황당한 이야기지만, 당시로써 남편은 약속을 저버린 어머니가 너무 야속했던 것이다.
그래서 남편이 항상하는 말이 있다. 육아 신조다.
“할 수 있는 약속만 걸고, 약속을 했으면 꼭 지킨다.”
나도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아이에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부분이 이것이다.
“엄마가 너한테 약속하고 어긴 적 없지? 너도 네가 한 약속을 지켰으면 좋겠어.”
문득 생각이든다. 우리 엄마는 ‘약속’에 대한 교훈을 주기 위한 ‘빅 픽쳐’를 계획하고 그러 신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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