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주 어려서부터 사건 사고에 대해 경각심이 높은 편이었다. 아니 어쩌면 트라우마일지도 모르겠다. 5살 이전까지 서울에 살았는데, 어느 날 친구가 자기 집에 놀러 오라는 말에 그 집을 방문한 적이 있다. 친구는 불이 안 켜져 있는 방안에 나를 밀어 넣고는 문을 잠가버렸다. 금세 친구의 엄마가 와서 문을 열어주고 친구를 나무랐지만, 나는 극도로 무서웠고 울었던 것 같다. 그 친구에게도 이유는 있어서 원망하지 않는다. 어려서 나는 동네 깡패 수준으로 아이들을 제멋대로 휘어잡고 다니는 아이였다. 부모님이 장사를 하셔서 시골 친가, 외가에서 떨어져 산 시간이 많다 보니 제멋대로 컸나 보다. 엄마는 그때를 회상하시면 아이가 우는 소리만 들리면 숨어버리셨단다. 내가 하도 애들을 때리고 다니고 사고를 치고 다녀서 그랬단다. 몇 가지 사례만 들어도 나의 5살 이전 과거가 어떤지 알기에 그 친구를 원망하진 않지만, 갇힌다는 공포심은 남아있다. 나는 여전히 엘리베이터가 무섭다. 초등학교 때는 미끄럼틀에서 올라가는 애들과 내려가려는 애들 틈에 끼어 떨어진 적도 있다. 그리고 계단을 오르다가 계단에 광대뼈가 부딪혀 크게 다친 적도 있다. 지금도 흉터가 있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은 나에게 마음의 흉터들을 남겨서 계단도 무섭도 높은 곳도 무섭고 좁은 공간도 무섭다.
인생에 있어 이런 공포심을 극대화 한 사건은 94년도 성수대교 붕괴사고와 95년도 삼풍백화점 사고다. 그때 나는 인천에 살아 텔레비전 뉴스를 통해서만 보았지만, 그날의 사고가 너무 엄청나고 끔찍한 일이라 몇날 며칠을 지켜 보았다. 버스를 놓쳐서 살아났다는 이야기, 버스를 잡아타서 죽었다는 이야기, 백화점이 붕괴되기 전에 나온 사람, 백화점이 붕괴되기 전에 들어간 사람 등의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특히 무너진 삼풍백화점에서 며칠을 갖혀있었다 극적으로 구조된 두 명의 여성이 있었다. 무너진 건물 틈새에 며칠을 갇혀서 살아 나왔다. ‘내가 만약 같은 상황이라면’ 가정하는 생각을 지금도 한다. 24년이 흘렀지만 나는 종종 그 사람들이 떠오르고 그런 사고들이 떠오른다. 가만히 앉아 생각하면 그 상황들이 너무 아파서 눈물이 나온다. 세월호 사건도 그렇다. 너무나 아까운 목숨들이 희생되었다. 나는 숫자와 날짜를 잘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세월호 사건이 있던 그 날은 평생 잊지말자고 다짐했다.
이런 사건사고는 당사자에게만 해당하지 않는다, 온국민이 같이 슬퍼하고 고통을 받는다. 나처럼 트라우마로 남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아이들에게 사고가 나지 않도록 조심을 많이 시킨다. 우리나라는 사람보다 차가 먼저고 사람의 마음보다 이익 추구가 먼저다. 사람이 먼저고 사람의 마음과 안전이 보장되는 나라가 되면 좋겠다. 스트레스가 적고 행복한 나라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싶다. 차는 조심해야겠지만 차가 사람을 먼저 조심하는 곳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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