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릴 때는 바나나가 천 원이나 했다. 그때 라면이 한 개에 90원이었으니까 라면 11개를 살 수 있었다. 지금과 비교하니 어마하게 비싸서 그 금액이 맞나 다시금 고민했는데, 맞다. 90원짜리 라면 하나 사고 10원짜리 껌을 한 개를 사 왔으니까. 그러니 지금 금액으로 따지면 바나나 한 개가 만원 정도라고 보면 된다. 그때는 무역제한 같은 것도 있었고, 기업들도 상품별 나눠먹기식으로 각자 특화된 상품만 제작 판매했다. 롯데는 껌, 삼양은 라면, 빙그레는 아이스크림, 뭐 이런 식이다.
그래서 바나나는 이러나 저러나 먹기 어려운 과일이었다. 부의 상징 같았다. 우리는 바나나란 단어를 알고 있었고 실제로 보았지만 맛을 본 적은 없었다. 부모님은 맞벌이로 매일 바쁘게 사셨지만 아이는 셋이나 되어서인지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그런 부내나는 과일을 먹어 볼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아빠가 바나나 한 개를 사오셨다. 지금 생각하면 웃길 수도 있다. 마치 소주 한잔 사 온 것 같은 그런 느낌이다. 부모님은 어른 손바닥 길이만한 작은 바나나 한 개를 세 조각내어 우리 삼 남매에게 나누어주셨다. 맛이 어땠을까? 정말 달콤하고 부드러운 맛이었다. 종종 그 맛에 대해 생각을 하는데, 처음 먹어본 거고 너무 작은 조각이라 맛있다고 착각한 줄 알았다. 그런데 나중에 본 기사에 따르면 그때 수입해 먹었던 종은 해충에 취약해 다량생산이 어려웠단다. 그 후에 대량 수입해서 값싸게 먹게 된 종과는 다르기에 그때 바나나가 ‘진짜’ 맛있는 바나나였다.
그때, 부모님은 바나나를 드시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그 작은 바나나 하나를 오롯이 내어주셨다. GOD의 ‘어머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라는 가사처럼, 부모님은 특히 엄마는 귀한 음식일수록 우리들에게 넘겨주셨다. 그리곤 남는 거나 과일의 중앙 뼈같은 걸 드셨다. 그 바나나를 먹었던 기억이 지금까지 남는 건, 그 바나나가 천 원이나 했다는 것과 그 작은 바나나 하나를 우리 삼 남매가 다 나눠먹었기 때문이다. 굉장히 비효율적인데, 부모의 사랑은 그렇게 비효율적이다. 아낌없이 내어주게 되고 돌려받기 어려운 것이 부모의 사랑이니까. 나도 그런 사랑을 하고 있어서, 이제야 조금씩은 헤아릴 수 있다.
하지만 아직 철들고 싶진 않아. 하얗고 맛있던 바나나 한 개의 한 조각만 기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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