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될 즈음 무와 배추 모종을 사다 심었어요. 무는 3 뿌리 배추도 3 뿌리. 그중 배추 하나는 못쓰게 되어 뽑아버렸고 나머지 애들이 무럭무럭 자랐네요. 한참 자랄 때 농막에 못 가긴 했지만, 잘 자라는 건 가끔 보아도 알 수 있죠.
그리고 지난 주 남편 친구들이 왔다가 한분이 '어 이거 무 아닌 거 같은데, 뭐지?'이러는 거여요. 자세히 보니 무가 안 보이고 잎만 무성하더라고요. 그 주엔 손님 치르느라 정신이 없어 다음 주가 되어 다시 들여다보았어요.
- 이거 뭐지?
뭔가 한참을 고민하다 네이버 사진 검색으로 찾아보니 '열무'가 나오네요. 혹시 몰라 어머님과 영상통화로 여쭤보았어요.
- 헐, 열무가 맞았다!!! 열무!!!!!!
나는 무를 샀다고!!!
더군다나 이 열무들이 꽃대까지 나올 정도로 너무 커버려서 먹을 수가 없다는군요. 하여 퇴비장으로 직행했어요. 하아. 그리고 배추 3 뿌리 중 하나는 아무리 봐도 이것도 배추가 아니네요!! 너는 또 무엇이냐.
아니 여기 구입한 곳, 왜 이럼? 하아 다시 거기서 모종 사지 말아야겠어요. 하아. 아니면 내가 착각해서 구입했나..??
오롯이 하나 남은 무님은 러시 앤 캐시에 나오는 무과장을 닮았어요. 사람처럼 달려 나가는 모습 옆에 서류가방을 쥐어주고 싶네요. 에효효 너 하나 남았구나. 작년엔 올라온 부분만 보고 다 자란 줄 알고 뽑았다가 난감했었어요. 딱 나온 부분만큼만 자랐고 그 밑에는 잔뿌리였던 것이었지요! 급 미니 무가 되어버린 무를 보고 허망했던 기억이 나네요. 이번에도 딱 보이는 저만큼만 무인 것 같네요. ㅎㅎ
남편이 동파 우려가 있어서 비닐하우스로 가는 호수의 물을 뺀다고 합디다. 하여 비닐하우스 마지막 물 주기를 하여 보고 있었어요. 한낮엔 비닐하우스가 아직 따뜻해요.
에구, 올해 농사는 이래저래 폭망이네요. 작년엔 별거 안 해도 쑥쑥 자라서 놀랐는데 말이죠. 아, 뭐 그래도 허브는 잘된 편이니까 나름 괜찮은 것인가??
아, 팥도 잘되었구나. 아랫 땅 할머니가 심으라고 주신 팥을 몇 개 심지도 않았는데, 이리 잘되었어요. 원래는 진즉 따려고 했는데 좀 늦어서 열매 상태가 괜찮은지 모르겠네요. 아래 사진의 한 바구니는 무려 '딱 한 개의 팥알'에서 나온 수확물들이에요. 정말 몇 알 안 심었는데, 다 따느라 고생했네요. 에구 내 허리야.
내년엔 좀 더 알뜰이 잘할 것 같아요. 초당옥수수 많이~ 꿀고구마 많이~ 상추 적당히~ 방울토마토와 가지는 끈으로 잘 묶어서 적당히~ 참외 적당히~ 그 외 과실수는 모두 과실주로 고고~ ㅎㅎ 아 참, 과실주로 오디주, 앵두주, 복분자주, 칡꽃 주, 머루주 등 담갔고 이제 조금씩 맛을 보고 나눠주고 있어요. 반응이 나쁘진 않은데 설탕이 좀 과해서 한 두 병의 과실주에는 소주를 더 붓기로 했지요. 칡 꽃술은 정말 말 그대로 약술 느낌이고요. 복분자주가 인기가 좋았네요. 특유의 향이 잘 어우러져서 괜찮았어요. 앵두주도 괜찮았는데, 그건 민화 샘 선물로 드렸어요. 과일을 뺀 과실주는 양이 많지 않아서 조금 민망했지만, 결과물 자체가 아니라 과정을 생각한다면 저에겐 무척 귀한 선물이에요. 다들 아실까 모르겠네요. ㅎㅎ 그래서 농산물 선물 주는 사람이 참 귀 해 보여요. 감자 한 알도 소중해요.!!
아, 그리고 또 난로가 바뀌었네요. ㅎㅎ 겨울엔 농막 앞에 천막을 치기로 했고 연통이 설치된 난로로 바꾸었어요. 남편이 자기 용돈을 합쳐서 바꾸었지요. 앞에 두 눈 같은 게 고구마 통이랍니다. 구워 먹어 보니 괜찮았어요. 연기 안 나고 따뜻해서 괜찮아요. 기존 화로는 보기는 예쁜데 따뜻하기가 좀 힘들어서 말이죠. ㅎㅎ 연기도 많고요. 천막 안에는 이런 난로가 더 나은 것 같네요.
양평의 쓸쓸한 가을 겨울로 가는 느낌도 참 괜찮아요. 큰 거실 창으로 바깥을 보는데, 다른 일을 하다가 문득 바라보아도 그 분위기를 바로 보니까 좋더라고요. 작년도 이레서 아주 추운 일이 주만 빼고 농막으로 왔었지요. 올 겨울도 너무 기대돼요. 눈 오면 아이들이 얼마나 좋아할지, 그 단 하루라도 그날의 기억이 선명해서 겨울 자체가 즐거웠거든요. 올 겨울의 비닐하우스는 또 어떨지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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