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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가장 예쁠 때는 5월이다.

서울과 양평을 오가다 보면, 옛 상사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산이 가장 예쁠 때는, 5월이야. 5월 나무의 싹이 올라오면서 저마다 다른 색을 보여주거든. 6월이 되면서부터는 다 같은 색이 되어버리지." 처음에 이 말을 듣고는 제대로 받아들이진 못했다.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어린 시절 시골에서 지냈기에 자연을 제법 잘 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자연에 대한 시각은 여름과 겨울 한정이었다. 한두 시절 맛보기 만으론 제대로된 매력을 알기 어렵다. 산의 변화는 작은 풀한포기에서 부터 시작한다. 어떤 풀들은 연둣빛이고, 어떤 풀들은 초롯빛이고, 또 어떤 풀들은 보랏빛이다. 이런 색들이 어우러져서 작은 나무 군집을 만들고 산을 이룬다. 5월의 변화는 그 시작부터 드라마틱하다. 갖가지 색들이 그렇게 본연..

[3/100] 삶을 평평하게 만드는 글쓰기

이야기를 쓸 때는 입체적인 주인공이 있어야 재미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내가 입체적인 사람이 되면 사는 게 여간 힘들지 않다. 사람 하나는 한 권의 책이라고 하는데 어떤 사람에게는 해피엔딩의 로맨스 소설이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에겐 스릴 러거나 호러물일 수도 있다. 남의 관점이 아니라 스스로 그렇게 생각이 된다면 사는 게 그렇게나 가혹하다. 예술가의 삶은 이런 삶도 나쁘진 않다. 이런 과정을 통해 좋은 작품을 남긴다면 그 또한 그들에겐 좋은 삶일 수 있다. 나도 그림을 그리지만, 그렇게 천재적인 사람이 아니기에 그런 삶이 맞다고 생각되진 않는다. 아니 적어도 다른 천재가 그렇게 겪으면 좋겠지만 나는 그다지 그런 삶을 원하진 않는다. 나의 삶은 후진 없는 롤러 코스터 같았다. 감정의 기복이 그리하였다. 돌이켜..

[2/100] 병원은 무섭지

지금은 병원이다. 정기적으로 혈당검사를 한다. 직장다닐때는 몇시간 빼기가 어려워 토요일에 일정을 다 미뤄놓고 하루를 병원에서 보내곤 했다. 지금은 진찰 전 날 따로 병원에 와서 피검사를 받는 편이다. 새벽에 일어나 병원에 와서 검사 받고 진찰받으면 시간도 시간이지만 상당히 피곤하다. 병원은 그런 곳이다. 사람의 기운을 뽑아 가는 곳. 어릴때 주사 맞기 싫어서 도망 치다 잡혀와 맞은 적이 많다. 아예 안맞은 적도 있다. 어려서부터 자주 아프던 동생은 아무렇지않게 잘맞았기에, 나는 다소 부끄러웠다. 책이나 다른 사람들의 경험 이야기를 들으며, 어느 날 좋은 깨달음을 얻었다. 다른 생각에 집중하면 바늘이 들어가는 순간이 나도 모르게 지나간다는 것이다. 그대로 써보았더니 정말 효과가 있었다. 특히 오랜 치과 치..

사과의 정석

사과받을 일이 생겼다. 약속에 늦는 이유를 말하더니, 이윽고 다음 전화에는 좀 더 늦게 올거라고 했다. 한참이 지나도 연락이 없어 전화해보니 역시나 오늘은 어렵다는 것이다. 화낼것까지야 없다고 스스로 다독여본다. 이 사람을 만나 운전교습을 받으려고 했던거라 사실 다른 대안을 찾는 것도 매우 귀찮은 일이다. 사과없는 사과를 듣자니 생각이 깊어져 여기에 글을 남기고 생각에서는 덜어내보려 한다. 역지사지다. 사과를 할때 어떻게 해야할까? 굳이 감정적으로 호소할 필요가 없다. 내가 그로 인해 미안함만 표시하면 된다. 굳이 구구절절할 필요가 없다. 딱 간단하게 요약만 하여 상황을 알려주어야한다. 그리고 약속을 어긴 것에 대해 미안해야 한다. 무엇보다 금보다 귀한 시간을 뺏아 갔다. 나의 시간이 귀한만큼 남의 시간..

사과를 먹는 다는 것

사과를 깎다 생각이 듭니다. 예전에는 사과를 고를 기회가 적었습니다. 엄마가 시장에서 사다주시는 사과를 그저 받아먹었으니까요. 편의점에서 사과를 팔기 시작하자, 가끔 먹고 싶을 때 사과를 사 먹곤 했습니다. 그리고 이 사과의 맛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됩니다. 가끔은 맛있는, 가끔은 맛없는 사과를 먹게되니까요. 값이 비싸다고 사과가 맛있진 않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을 위해 사과를 준비하면서 사과를 고름에 좀 더 고민을 하게 됩니다. 집 앞 맛있는 사과를 사 먹던지 아니면 생협에서 파는 조금 더 비싼 유기농 사과를 사던지 선택의 폭을 넓혀 고민합니다. 그리고 그런 선택의 기회조차 없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합니다. 우리 부모세대는 유기농이란 단어가 낯선 세대이기도 하지만, 같은 값이면 양이 많은 쪽을 선택해야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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