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뒷집 할아버지께서 부추 뿌리들을 나눔 해주셨었어요. 텃밭 한쪽 끝에 작게 밭을 만들어 부추를 심었는데, 초보 텃밭 꾼인 지라 부추를 언제 잘라먹어야 하는지 모르겠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 어느새 화려하고 예쁜 꽃이 피더라고요. 부추꽃이 그리 예쁜 줄은 처음 알았죠. 그러고 나서 더욱 놀라운 일이 일어났었어요. 많은 수의 나비와 벌들이 날아와 꽃에서 꿀을 빨아먹더라고요. '아 이레서 내가 주말농장 하지'라는 생각을 하며 의자를 끌어다 앉아 한참을 구경했어요.
그래서 올해는 초여름 즈음 부추들을 한번 잘라먹고 꽃이 피도록 기다렸지요.
그리고 짜자잔~
코로나로 격리되어 있다가 거의 4주 만에 왔더니 부추꽃은 활짝 피어 있고 나비들이 몰려들었더라고요. 아직 개화가 덜하고 비가 내리기 시작해서 나비와 벌들이 많지는 않았지만, 작년에 못 보던 종류의 나비들을 보니 기분이 흐뭇했어요.
그 달마다 그 계절마다 쌓이는 즐거운 추억들 때문에 마음의 안정을 얻고 행복해지는 것 같아요. 이번 주는 추석인 데다 태풍이 올라와서 다음 주에 갔을 때 꽃이 얼마나 남아 있을지 모르겠네요. 어떤 꽃들은 생명력 강하게 자기 자리를 지키기도 하고 어떤 꽃들은 유리꽃처럼 금세 아스라 지기도 하더라고요. 자연의 섭리는 알 수록 신기하지요.
참, 올 농사와 날씨에 대해서 총명하자면, 작년보다 달팽이는 적었고 메뚜기는 많았어요. 그리고 작년엔 가지가 무척 잘되었고 올해는 그 반대고요. 또 반대로 고추와 방울 토마 토류는 잘되었네요. 수박은 작년만 못했고요. 그리고 나무 열매들은 대부분 잘되었지만, 벌레가 작년보다 늘어서 그런지 기다리고 고대하던 자두는 정말 망했고요. 미니사과도 망해가고 있네요. 대추도 그렇고.
참 이상하지요. 매년의 기후에 영향을 이리도 받다니 말이에요. 서울 같은 도시에서는 비가 오나 보다 눈이 오나보다 좀 덥네 좀 춥네 이 정도인데, 시골의 작물들과 곤충들은 미세한 변화에도 결괏값을 엄청 달리하니 말이죠. 그렇다고 비닐하우스에서 키우자면 맛이 한참을 덜해요. 그러다 보니 '내년엔 농약을 좀 뿌려야겠네'라는 말이 절로 나와요. 농약을 뿌렸다면 자두 한 개라도 먹었을 텐데 싶고요. 농약을 뿌렸다면 잡초들 걱정도 덜했겠지요.
올해는 가급접 토목공사를 할 예정이라, 내년엔 또 한참이 바뀔 것 같아요. 토목공사를 하며 땅을 높이면, 나무들을 한참 가지치기해준 후에 옮길 것 같거든요. 올해 소출이 많았어서 좀 적어도 되지 싶긴 해요. 다 술 담갔더니 술꾼 될 것 같아 무섭기도 하네요.
요즘엔 불렛저널에 푹 빠져서 매달 새로운 다이어리 형식으로 만들고 있거든요. 이번 달 망하면 다음 달 예쁘고 알차게 꾸미면 되니까 빨리 새 달이 되기를 기다려요. 그 달의 첫날이 아주 즐겁게 돼요. 농사도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내년엔 어떻게 구성하고 키울지 생각하면서 구상을 하다 보면 즐거워지거든요. 그리고 허리를 뽀개가며 열심히 밭 갈고 작물을 심겠죠. 그 해의 수확을 예측하면서 즐거울 거고요. 복분자술이 익어가기도 전에 남편 친구들이 와서 다 먹겠지 싶고요. 작년엔 한 팩을 받아갔어요. 그런 소소한 나눔도 행복한 즐거움 중 하나고요. 이렇게 글을 써 내려가며 즐거운 기억들을 끄집어내니 태풍이 오는데도 기분이 좋아지네요.
그나저나 태풍으로 인한 인명피해가 없으면 좋겠네요. 지난 홍수로 인한 가슴 아픈 사연들을 보며 많이 슬펐어요. 엄마가 되면서 조금 더 타인, 특히 가족의 불행에 같이 슬퍼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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