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고 기다리던 그날이 왔습니다.!
바로 술 거르는 날이죠!!!!
오디는 얼추 1~2주 안에 거의 다 열렸기 때문에 거의 같은 날에 술을 담갔어요. 그런데 앵두는 올해는 나무도 크고 열매도 꾸준히 익은 관계로 처음 담근 날과 마지막 담근 날이 얼추 한 달은 차이가 나더라고요. 그래서 저 큰 한 병은 한 달 뒤에 걸러야 하더라고요.
작년엔 제가 전적으로 따고 담그고 술 담그는 모든 과정을 진행했거든요. 눈대중을 사랑하는 지라 열매 술 설탕을 1:1:1로 하라는데, 그 상황의 기분에 따라 설탕을 넣었어요. 그랬더니 모든 술이 엄청 달더라고요. ㅎㅎ 그리고 술을 거르는 것도 귀찮아서 쇠망을 대고 대략적인(!!!) 건더기만 걸러지도록 거르고 마셨어요. 기억상 밑에 뭔가 많이 가라앉았던 것도 같네요.
남편은 이장님 같지만 시골 출신의 '도시 남자'라 커피도 로스팅해 먹기도 하고 맛평가를 신랄하게 하는 편이에요. 뭘 하는 것도 꼼꼼하고 계획적이죠. 작년 복분자 주에 반한 남편이 이번에는 모든 과정을 전담해서 만들더라고요. 열매도 따고 씻어 말리고 설탕을 15%에 맞춰 계량 후 담그는 것도요. 그리고 거르는 것도 커피 거름망을 가져다 두 번씩 거릅니다. 이걸 하루 종일 하더라고요. 와....... 성격차이....
우선 앵두주부터 걸렀습니다. 작년엔 술보다는 그냥 막 먹었기때문에 작은 병으로 두 개 정도 나왔었어요. 그중 향이 좋은 건 저희 민화 샘께 선물을 드렸었죠. 앵두주 드린다고 큰소리쳤다가 너무 양이 적어서 그럭저럭 욕을 먹었던 기억이.. ㅎㅎ 앵두주는 앵두의 상큼한 맛과는 다르게 앵두주만의 싱그러운 향을 가지고 있는데, 올해는 남편이 계량까지 해서 만드는 지라 어떨지 기대가 되더라고요.
거르면서 맛보기로 담은 술을 먹고 인상을 썼어요. 플라스틱 컵에 담궈주는 맛이 나겠습니까? 바로 일어나 안 쓰던 유리컵을 들고 와 술을 요구했습니다.
오 괜츈네?
짙은 알콜향이 첫맛을 때리다가 진한 앵두주의 향이 뒷맛을 끌어당깁니다. 놀라운 것은 입안의 잔향이 시간이 지나도 남아 괜찮더라고요. 알코올 향도 강하고 도수도 높은 지라 얼음을 넣고 언더락으로 먹었어요. 더운 날씨라 그런지 바로 녹더라고요. 큰 덩어리를 하나 더 넣어서 두어 잔을 즐겁게 마시고 낮잠을 잤어요. ㅎㅎㅎ
앵두주는 씨앗에 독성이 있기때문에 조금만 먹던가 3~6개월 정도 더 두었다 먹는 게 좋답니다.
이 영롱한 앵두주의 색깔을 보시어요. 눈으로만 먹어도 100점입니다. 아가씨로 돌아가 좋은 곳에 가서 식전주를 마시는 느낌입니다.
그러고 나서 오디주는 거르기 시작합니다. (남편이)
정말 건더기가 심하더라고요. 커피 거름망의 소비가 너무 빠른지라, 잠시 쉬었다 작은 쇠망을 사다 1차 걸렀습니다. 하지만 건더기가 씨앗까지 있어서인지 너무 심해서 어느 정도 남은 부분은 그냥 버리기로 했네요. 도저기 거를 수 없기에~ 우리는 술꾼이 될 수 없기에~
작년 최고의 술은 복분자 였거든요. 그래서 사실 복분자 이전 마신 술은 잘 기억이 나지 않아요. 오디주를 마시긴 했는데 무슨 맛인지 기억이 안 나더라고요. 고로 큰 기대 없이 오디주를 시음하게 되었죠.
오, 뭐지? 이 술 엿술인가?
달큰한 향이 내 혀를 돌고 돌아 감싸는데, 엿술 인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렇게 맛있었던가? 앵두주와는 145도 정도 다른 느낌의 술이라 매력적이었어요. 이것은 개량해서 만든 술의 힘인가? 나는 병마다 맛이 다 달랐는데? ㅎㅎㅎ
앵두주는 눈으로 한번 먹고 맛으로 한번 먹어 좋고요. 오디주는 그 자체의 달큰하게 감싸 오는 맛이 최고네요. 아아아 각 큰 페트병 두 개뿐이라 아쉬워라. 지인들에게 선물해 주마하고 이미 약속해둔지라 다 저희게 아니여요. 그래도 역시 맛을 공유하는 것도 기쁨이죠. 선물용 작고 예쁜 병을 사러 가야겠네요. 총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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