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my life/이런저런

김밥한줄, 미역국, 그리고 깍두기

uchonsuyeon 2019. 3. 14. 13:23


아이를 데려다주고 하원 하는 길에 

가끔 가던 김밥집에 들렀다. 


일을 한다고 어제는 2시까지 컴퓨터를 켜놓고 일하는 둥 마는 둥 그렇게 시간을 보낸 탓에 피곤했다. 아이들도 이런 날은 어떻게 아는지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엄마도 일어나라고 성화를 부렸다. 애절하게 엄마가 나와야 하는 이유와 방법에 대해 설명하는 큰 아이의 마음이 통했는지 나는 침대 밖으로 나와 거실 바닥에 누워있다 하루를 시작했다. 어제도 다시 겨울이 온처럼 추운 날이었기에 오랜 시간을 들여 잘 입히고 아이들 등원을 시키니 몸이 더 노곤했다. 그런데 김밥집이 눈에 띄더라.


나도 모르게 카페 같은 분위기의 이 김밥집 문을 열고 들어가 메뉴를 한참 들여다보았다. 보통은 사다 집에서 먹는데, 오늘은 나도 자리를 하나 차지하고 나가리라 생각했다. 첫 번째로 고른 메뉴를 금세 물리고 오징어가 들어갔다는 <동해 김밥>을 시켰다. 이 집은 <시드니 김밥> 같은 이름을 붙인다. 나름 브랜딩을 하고 다소 색다르게 음식들을 만들어낸다. 착한 김밥이라는 이름처럼 안에 들어가는 것들도 깔끔하고 하나하나 손 느낌이 들도록 야무지게 내온다. 


잠시 스쳐 지나듯 먹고 갈 심산이었는데, 

김밥 한 줄이 예쁜 그릇에 담겨 나왔다. 그리고 작은 그릇에 미역이 가득한 미역과 깍두기가 나왔다. 우리 아이들이 먹으면 됨직한 작은 깍두기들이 장난감처럼 느껴진다. 김밥을 한입 베어물 고나니 이 말이 저절로 나온다.

'이 맛이야'. 

몸이 피곤하니 미역국으로 마음이 동해 한 모금 마신 후 미역들을 다 건져먹었다. 그리고 남은 국물은 김밥들과 천천히 음미해보리라 생각하며 반쯤 남겨두었다. 장난감 깍두기도 하나 집어먹어 보고 또 이 말이 저절로 나온다. 

'이 맛이야.' '사가고 싶다.' 

조금 짜긴 하지만 그 깍두기가 엄마를 생각하게 했다. 우리 엄마 깍두기 맛과 비슷하다. 우리 엄마의 깍두기는 조금 달긴 했지만, 시원하고 깔끔한 맛이 좋았다. 충천도 김치의 특징이다. 시원하고 깔끔한 맛이 좋다. 다만 묵은지가 되면 추천하고 싶진 않다. 묵은지가 되기 전에 어서 김치찌개로 소비해야 한다. 깍두기를 먹다 엄마의 깍두기 국물에 밥까지 말아먹던 기억까지 생각이 났다. 엄마 깍두기 담그는 것좀 배워둘걸. 직장 다니며 애 셋 키우느라 고생했을 엄마를 위해 난 한 게 없다. 아들이었으면 이런 죄책감은 덜했을 거라는 생각으로 미안함을 좀 걷어내 본다. 

엄마의 깍두기 기억을 물리고, 다시 동해 김밥의 오징어와 각각의 재료들을 음미하며 목구멍으로 아쉽게 밀어 넣는다. 다 먹고 나면 가게 주인에게 극찬해야지라고 다짐하면서  마지막 한 개의 김밥과 깍두기 그리고 미역국을 남김없이 다 먹었다. 서둘러 몸을 일으켜 계산을 하면서 주인에게 말을 건넸다. 정말 맛있다는 말에 수줍은 미소를 보이는 가게 주인의 모습이 보기 좋다. 아마 하나 남김 없는 내 밥상 위를 보면 더 좋을 테지. 그랬으면. 


마음을 움직이고 어루만지는 음식은 때로 이렇게 느닷없이 만난다. 아니 어쩌면 이런 음식을 만나기 위해 마음이 피곤하고 몸이 힘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누군가 그랬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은 '배고플 때 먹는 음식'이라고. 마음이 배고플 때 가끔은 뜨거운 국물과 한 알 한 알 정성으로 만들어진 가벼운 음식이 그 허기를 채워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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