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때였나, 머리가 다 벗어지시고 입술 끝에 늘 침이 고여계신 남자 선생님이 한 분 계셨다. 중학교 여자애들에게 인기가 없는 타입이다. 나도 다른 여자아이들과 다르지 않았다. 더군다나 선생님은 늘 어려운 존재였다.
보통 학기가 끝나갈 즈음에 학과과정이 모두 끝나면 선생님들은 재미난 이야기를 해주시거나 자유시간을 주시는 등 대체적으로 놀 기회를 주셨다. 앞서 얘기한 대머리 선생님도 그러셨다. <질문시간>을 주신다고 하셨다. 자신은 아는 것이 많아서 어떠한 질문도 좋으니 해보라고 학생들을 한 껏 격려하셨다.
그때, 나는 머리가 좋아지는 약이라고 tv에서 광고하는 약을 먹고 있었다. 토*콤이라는 약이었다. 엄마가 영양제로 사다 주신 건데, 광고에는 늘 그렇게 말했다. 지금 보면 그냥 눈영양제인듯한데. 아무튼 나는 약으로 과연 머리가 좋아진다는 것을 좀처럼 믿을 수 없었다. 이 궁금증을 해결할 좋은 기회다 싶어서 어렵게 손을 들어 선생님께 질문했다.
‘약으로 머리가 좋아질 수 있나요?’
선생님은 황당함과 화를 섞은 말을 내뱉으며 나를 나무랬다. ‘아니, 네 나이에 그런 얼토당토 하는 질문을 하냐’고 한참 설교하셨다.
- 정말 나의 잘못이였을까? 선생님은 내가 잘못했다고 몰아가며 이야기를 했다. 그래 잘못이었다면, 온화한 미소로 질문을 받겠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질문을 한 내 잘못이겠지!
그때는 참으로 내성적인 성격이여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손을 들어 질문을 하는 것 자체가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었다. 나의 용기에 대한 반응과 결과가 예상과 너무 다른 결과라 큰 충격을 받았었다. 이 사건은 평생에 큰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권위자의 질문이나 답변에 대해 불신하게 된 것이 첫 번째고, 질문을 두려워하게 된 것이 두 번째다. 물론 지금의 나이에서는 나쁜 선생의 본보기로써 그 선생님을 지목할 정도의 일화 정도로만 남았지만, 현재가 되기까지 과정에서 수많은 걸림돌로 가끔씩 튀어나오곤 했다. 그렇게 창피를 당해보았으니 사람 많은 곳에서의 질문이 어렵다. 꼭 해야하는 질문이라 했어도 한 건 긴장해버리는 바람에 이야기의 흐름을 놓치거나 엉뚱한 이야기를 하는 등 피해가 이만 저만 아니다. 불신의 문제도 그렇다. 대단해 보이거나 완벽해 보이는 사람에게도 이면이 있을 거라는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나이가 들면서 많이 고치려 노력하고 희석시켰지만, 여전히 어딘가 그 잔재가 있다. 그러고보니 ‘각인’이라는 입장에서 그 선생님은 평생 나의 기억을 따라다니겠구나.
‘좋은 질문을 해야 좋은 답변을 얻는다’고 하긴 하더라. 그런데 좋은 답변자는 질문자의 대화와 의식의 수준에 맞춰 들어주고 대답해줘야하지 않을까?
내가 만약 지금 그런 질문을 받는다면, 이렇게 대답해주고 싶다.
- 선생님도 그쪽 전문 분야는 아니라서 잘 모르겠다만, 과학은 계속 발전하고 있고 언젠가 그런 약이 정말 나오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머리가 좋아진다는 게 어떤 의미에서는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뜻일지도 모르겠구나. 마음이 편안해지면 머릿속이 복잡하지 않아서 어떤 걸 기억하기도 좋아지고 ‘정말 머리가 좋아지는 것’ 같거든.
덧, 나는 그래서 질문자를 꾸짖는 강연자를 정말 좋아하지 않는다. 예수님이나 부처님이나 낮은 자리로 오시고 낮은 사람의 발을 씻겨주시는 등 더 낮추려고 하셨다. 남을 꾸짖는 일을 자주하는 이 분들은, 남을 꾸짖을 정도로 당신이 그렇게 높은 사람인가?라고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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