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my life/매주하는 주말농장여행

산이 가장 예쁠 때는 5월이다.

uchonsuyeon 유천수연 2021. 4. 19.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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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과 양평을 오가다 보면, 옛 상사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산이 가장 예쁠 때는, 5월이야. 5월 나무의 싹이 올라오면서 저마다 다른 색을 보여주거든. 6월이 되면서부터는 다 같은 색이 되어버리지."

처음에 이 말을 듣고는 제대로 받아들이진 못했다.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어린 시절 시골에서 지냈기에 자연을 제법 잘 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자연에 대한 시각은 여름과 겨울 한정이었다. 한두 시절 맛보기 만으론 제대로된 매력을 알기 어렵다.

산의 변화는 작은 풀한포기에서 부터 시작한다. 어떤 풀들은 연둣빛이고, 어떤 풀들은 초롯빛이고, 또 어떤 풀들은 보랏빛이다. 이런 색들이 어우러져서 작은 나무 군집을 만들고 산을 이룬다. 5월의 변화는 그 시작부터 드라마틱하다. 갖가지 색들이 그렇게 본연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산 하나가 흰꽃으로 나부끼기도 하고 초록빛을 보이기도 한다. 대추나무처럼 늦게 잎이 올라오는 녀석들은 고집스레 그 사이에서 마른 가지를 자랑한다. 

우리가 양평에 땅을 사서 두 번째 보금자리를 만들기 전에는 알지 못했던 자연의 변화들이다.

겨울 내내 꽁꽁 숨어 있던 구근 식물들이 멋지게 꽃대를 쳐올리고 화려하게 꽃을 피워낸다. 다 죽어 사라져 버린 줄 알았던 방울토마토의 씨앗들이 밭 여기저기 흩뿌려져서 무섭게 싹을 틔워낸다. 어려움 속에서 꽃을 피워낸다는 표현처럼 추운 겨울을 지나 더 멋지게 생명력을 드러내는 식물들을 보면 경이롭다. 나는 왜 이리 하찮게도 느껴지는지. 저 방울토마토의 싹 하나만도 못하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다행히도 나는 사람이다. 저 싹들을 뽑아내고 다른 식물들을 심을 수도 있다. 그래, 마치 이 작은 땅의 신이 된듯한 착각도 든다. 그래서 더 우습기도 하고 재밌다. 고요히 흩날리는 꽃잎들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아 초연하게 바라보기도 한다. 한참을 바라보다 보면 이상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남편이 있다. 예전엔 남의 시선이나 생각에 무척 예민했다. 아니 지금도 그렇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행복한 곳과 시간을 사수할 만큼의 여유가 생겼다. 예전보다 화장을 하지 않고 꾸미지 않는다. 슬리퍼에 운동복을 입고 다니며, 햇볕에 타 얼굴이 더욱 검어져도 좋다. 영화 은행나무침대에서 황장군이 계절의 변화와 상관없이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에 나를 투영해본다. 자연 앞에 나도 무릎 꿇고 앉아 기다리고 지켜본다. 

가만히 그런 시간들을 보내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아직 1년 차 주말농장 지기이지만, 나는 이 땅에 뿌리를 내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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