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태양 아래 집으로 걷다 보니, 아침에 짜증 나는 일도 있고 점심을 사 먹고 들어가기로 했다. 나는 마네키 네코(복고양이)인 편이다. 어디를 가든 아무리 텅 빈 곳이어도 곧 손님들이 몰려든다. 새로 개업했다는 가락국수 가게에 들어섰다. 옆 동네 상권이 발달하면서 우리 동네도 변화가 자주 일어나고 있다. 새로 여는 가게가 많은 만큼 문 닫는 가게도 많다. 원래 이곳은 피자 가게였다. 종종 주문해 먹던 테이크아웃 전문 피자가게였다. 쌀로 만들었기에 몸이 좀 더 낫지 싶어 사 먹곤 했는데, 어느 날 가락국수 가게로 바뀌어 있었다. 이 작은 가게는 상호만 바뀌었지 밖은 간판 외엔 무슨 가게인지 장사는 하는지 알 수가 없는 외관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되려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아내기도 하고 안쓰러운 마음도 일게 한다.
열린 가게문으로 들어서 주문을 위해 안쪽에 있는 카운터에 갔다. 선불이라는 말에 카드를 내밀며 한마디 했다. ‘밖에 메뉴판이 보이면 좋겠어요.’ 퉁퉁한 모습에 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주인은 부끄러운 듯 얼굴이 발게진다. ‘죄송합니다. 오늘 간판이 새로 오기로 되어있어요. 저희가 가게를 처음 하는 거라 부족합니다.’ 나는 알듯 모르게 살며시 미소를 짓고는 볶음 가락국수를 시킨 후 제자리에 앉았다. 손님이 좀 들기를 바라며 문가에 앉았다. 시킨 음식이 나오기도 전에 손님 둘이 들어섰다. 그리고 그들은 뚝배기 불고기를 시켰다. 미간 사이를 조금 들어 올린 후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메뉴판을 보았다. 김말이로 어설프게 만들어둔 벽면 메뉴판에 그 메뉴도 있었다. 진작 알았다면 이걸 시켰을까. 가게가 너무 작아서 사실 내부 구성도 어설프고 의자와 테이블도 자그마했다. 앞일이 다소 걱정이었다. 이윽고 볶음 가락국수가 나왔다. 예상했던 비주얼과 다른 모양새에 살짝 당황했다. 간장소스의 일본식 가락국수류를 생각했는데, 고추장 소스의 돼지고기와 해물이 섞이고 그 위에 만가닥 버섯과 채소가 올려져 있다. 다행히 좋아하는 채소다. 이름이 기억이 안 난다. 좋아하는 채소인데도 나이가 먹어감이 이렇게 티가 난다. 가락국수의 두어 줄기를 돌돌 말아 숟가락 위에 얹고 입안에 넣었다. 면은 적당히 잘 익었고 졸깃한 식감을 잘 살아 있다. 가늘게 저민 돼지는 가락국수와 먹기 좋았지만, 되려 가락국수보다 맛이 좋았다. 새우와 오징어 등이 풍성히 들어가 전체적으로 다채로운 맛을 느끼게 해 주었지만, 다음에 또 시켜 먹진 않을 것 같다. 뚝배기 불고기가 참 맛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고기가 맛있었다. 그리고 좀 전에 들어와 뚝배기 불고기를 시켰던 두 남자 중 한 사람이 어느새 밥 한 공기를 더 시켜 먹더라. 내가 먹던 볶음 가락국수는 제법 매웠다. 지역 커뮤니티에 매운 거 드시고 싶은 분 이리로 오라며 포스팅하고 싶을 정도였다. 두 번째 물을 떠먹고 있는데, 어떤 남자 한 분이 더 들어오더니 또 뚝배기 불고기를 시킨다. 여기는 가락국수 집인데, 뚝배기 불고기가 인기네. 문가에 앉아 있으니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을 읽을 수 있다. 긴 직사각형의 가게는 1.5m 정도밖에 안 되는 입구를 가지고 있다. 사람들은 이 가게가 정말 궁금했는지 지나가면서 안을 노려보며 끝까지 시선을 떼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다. 어떤 사람은 나와 눈이 마주쳤는데, 정말 끝까지 날 쳐다보고 있었다. 1.5m 거리를 나와 눈싸움하며 지나가더라. 겨우 매운 가락국수를 입으로 다 밀어 넣고 주인장에게 잘 먹었다는 인사를 한 후 가게 밖으로 나왔다. 태양은 여전히 뜨겁다. 편의점에 가서 달달한 라테 커피를 사 먹으려는 찰나, 문을 늦게 열고 일찍 닫는 동네 힙한 커피숍을 지나가며 나도 모르게 그곳으로 들어갔다.
나는 입이 너무 매웠고, 벌써 식도와 위에 아픔이 느껴졌다. 매운 숨결을 내뿜으며 정말 빠른 말로 ‘아이스 아메리카노 테이크아웃이요’를 외쳤다. 생소한 숨소리가 거슬렸는지, 커피숍 젊은 사장은 곁눈질로 나를 계속 주시하고 있었다. 갤러리 카페인 이곳은 시기별로 그림을 다르게 걸어두었고, 디자인 용품들을 카운터 부근에 전시해 두었다. 나는 강릉 맥주라고 예쁜 용기에 든 맥주 두병과 디자인 엽서를 들여다보며 눈길을 애써 모른 척했다. 아이스커피는 제법 빨리 나와서 다행이다. 무언가 어색한 순간을 피해 빨리 나올 수 있으니. 오늘 신고 나온 핑크색 샌들을 또각 거리며 커피숍 밖을 나와 성큼성큼 집으로 돌아왔다. 예쁜 아가씨가 그러듯 손으로 햇살을 가리며.
별거 아닌 이 일이 특별해지는 것은 특별한 일 없는 백수의 삶이라 그럴까. 아니면 특별하게 바라보는 관점이 생겨서 그런 걸까. 매운 볶음 가락국수와 아이스커피를 마시며 나름 즐거운 정오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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