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00 사람이다’이라고 한계를 지어버리면 그 사람 안에 갇혀버린다. 이것은 물건이나 장소 또한 그렇게 된다. ‘불편’함이 ‘익숙’함으로 바뀐 순간 발전의 여지는 사라진다.
그래픽 제품들은 나날이 발전해 간다. 프로그램도 장비도 그러하다. 포토샵 같은 프로그램은 비싸기도 해서 예전 버전을 고수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그것에 익숙하고 그 외 여러 가지 이유로 새 버전을 거부한다. 태블릿과 같은 장비도 그렇다. 익숙함에 길들어 버려 새로운 제품에 대한 탐구를 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면 점점 ‘과거에 머무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굳이 새로운 장비를 쓸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은 남겨둬야 새로운 사람 혹은 새로운 시대와 마주함에 있어 두려움이 없다.
나도 점점 구시대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열린 마음을 갖으려해도 자꾸만 안주하려는 건 어쩔 수 없다. 스스로 엉덩이를 걷어차며 일으켜 세워야 할 입장이다. 1년 전에 샀던 태블릿(펜마우스)도 그렇다. 남편이 자기 용돈을 보태어 새로 구입해준 태블릿은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아무래도 회사 태블릿을 주로 사용하다 보니 새 태블릿에 익숙해질 시간도 없었다. 구 태블릿은 둔탁한 플라스틱 위의 얼음판 같다. 너와 나는 기계로써 친해지면 안 된다고 계속 일깨워주는 느낌이었다. 새 태블릿은 말랑한 고무 촉이 ‘우리는 조금 탄력 있게 친해요’라고 속삭인다. 집에서 작업하게 되면서 새 태블릿과는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
이 새 타블렛은 남편이 없었다면 사지 않았을 것이다. 남편은 끊임없이 새로운 기계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산다. 창작의 영역에는 ‘문외한’이라며 선을 긋는 것과 대조적이다. 나는 ‘기계치’요라며 선을 긋는다.
회사 생활에서는 오히려 선을 긋는데 편할 수도 있다. 나는 과장이니까 해야 해. 나는 사원이니까 해야 해.라는 선들 속에서 자신을 가두는 게 낫기도 하다. 그 아슬한 선을 살짝 넘기만 해도 욕한 바가지는 먹는 곳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나는 이제 회사밖이다. 아마 그 회사 밖의 상황이 생각의 변화를 자꾸만 일으키나 보다. ‘안된다’, ‘어렵다’라는 생각에 이렇게 대꾸하게 된다.
WHY NOT? 왜 안돼? 내가 왜 저거 하면 안돼? 왜왜?
머리를 노랗게 염색하고 알았다. 안된다고 하는건 나 자신이구나 라고 말이다. 나이가 많으면 뭐? 내가 많은 게 맞기는 한가?라는 생각이다. 나는 남이 규정짓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성향에 맞춰 도전 해보리라. 원래 후회 안 하고 사는 사람이라 아주 좋잖아?
가볍게 힘빼고. WHY N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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