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아침부터 컨디션이 별로였다. 요즘 종종 그렇다. 불규칙하게 잠을 자면 더 그런 듯한데, 그렇지 않더라도 냉방병스럽게 아프다. 이러다 큰 병 있는 게 아닐까 생각도 잠시 해본다. 손끝에 가시만 들어가도 파상풍을 걱정하는 타입이라 조금 더 오버해서 생각해본다.
원래는 캘리그래피를 배우러 가야 하는데, 아픈 핑계로 가지 않았다. 이런 날은 운동을 하러 가는 게 좋다. 운동을 가나 마나 한참을 고민하다 자전거를 타러 가기로 했다. 자전거를 타고 한 바퀴 돈 후에 운동을 하러 가기로 마음먹었다. 길하나 만 건너면 되는데, 문득 자전거를 타고 지나치던 공원이 생각났다. 나는 그곳을 '나만의 정원'으로 삼았는데, 너무 오래도록 가지 않았다. 나만의 정원은 시에서 관리해주고 있어서 일 년 내내 아름답다. 예쁜 꽃이 피고 동물들이 살고 푸르른 빛이 가득한 곳이다. 출퇴근길에 자전거를 타고 다녔고 늘 이곳으로 돌아서 갔다. 출근이 즐겁고 행복하게 만드는 곳이었다. 이 곳을 지나며 자연의 향기를 맡고 하루를 시작하면 온전히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오래간만에 찾아간 '나만의 정원'은 여전히 싱그럽고 아름다웠다.
나만의 정원까지 찾아가니 회사에서 보낸 서류가 하나 생각났다. 서류에 사 인 하나를 부탁받았고 우편으로 다시 붙여야 했기에, 기왕 근처까지 왔으니 회사에 잠시 방문해보기로 했다. 몇 달 만에 보는 사람들인데, 어제 본 마냥 반갑게 인사했다. 서류에 사인하고 가볍게 인사를 하다 이런저런 '회사의 발전적인 방향'에 대해 수다도 떨고 헤어졌다. 그리고 이번 달 받은 스벅 쿠폰을 소진하고자 아는 과장님 한 분을 불렀다. 일전에 얻어먹은 것도 있어서 커피 하나 드리고 가려고 했건만, 어느새 과장님 두 분과 점심도 함께했다. 종종 생각나서 간절했던 회사 부근의 맛집에서 연어덮밥을 먹었다. 육아휴직이라는 애매한 경계선의 사람이라 점점 공통 대화 내용이 줄어드는 느낌도 받았다. 자유롭게 시간 사용이 가능한 나와 다르게 점심시간 한 시간에 묶인 분들이라, 밥을 먹은 후 짧은 커피 수다타임을 갖은 후 헤어졌다. 회사 다닐 때 이렇게 점심시간이 짧았나 싶을 만큼 시간이 금세 흘렀다. 현재 나의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걸까. 어찌 되었든 이제는 같은 틀이 아닌 다른 틀의 사람들이 되었다. 커피를 대접하러 갔다가 이래저래 즐겁게 얻어먹고 자전거에 올라탔다. 육아휴직 전 인사를 못 나눴던 다른 과장님 한 분을 만났다. 회사 다닐 때에 누군가 그만두거나 휴직할 때 인사를 못하고 가면 참 서운했는데, 내가 그런 입장이 되어서는 차마 인사를 할 수가 없었노라고 미안함을 표시했다. 반갑고 즐거운 일- 결혼 같은 거라면 여러 번 들어도 어렵진 않을 테지만, 회사를 떠나는 입장이라면 다른 이들에게 걱정을 끼치게 된다. 그리고 그 걱정을 내내 듣게 되는데, 나로서도 반갑지는 않더라. 자전거를 잡고 서서 한참을 대화를 나눴다. 우리 나이 때에는 제2의 인생에 대한 고민이 많아진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가는 사람들도 많고, 회사에서 발전 가능성이 줄어들면 그 후의 삶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된다. 한 편으로 이런 고민들을 같이 나눌 수 있는 몇몇 사람들이 있어서 다행이다. (반) 전업주부가 되면서 느꼈던 힘들었던 감정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며, 어찌 되었든 회사를 다니거나 이직을 하거나 전업을 하시지 말라고 당부했다. 회사 다니는 게 너무 오랜 습관이라 다른 생활(전업주부) 습관을 들이기도 어렵고 그 과정에서 스트레스가 이만 저만 아니다.
다시 헤어지고 나서 집에 도착하니 오후 3시가 훌쩍 넘었다. 마치 회사에 출근해서 수다 떨면 놀다 온 기분이다. 어쩌면 몸이 아픈 게 아니라 마음이 아픈 시기인지도 모르겠다. 옛 직장 동료들과 대화를 해보고 현재 상황에 대해서도 생각할 기회가 된 듯싶다. 때로는 흘러가는 데로 두다 보면 새로운 흐름을 만나기도 한다. 즉흥성이 충만해서 즐거운 하루였다. 아, 그리고 집에 오는 길에 옷가게 들러서 원피스도 한벌 구입했다. 완벽한 하루다. 완벽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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