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을 쓰고 나면 잘 빨아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음번 사용할 때 곤란을 겪거나 영원히 사용하지 못할 수도 있다. 원래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세심한 주의와 노력이 필요하다.
붓이 좋은 것일 수록 붓의 털은 동물 털로 되었을 확률이 높다. 그래서 찬물에 빨아주어야 한다. 확실히 빨아주기 위해서 팍팍 물에 치대는 경우가 있는데, 그렇게 되면 붓의 결이 손상된다. 붓을 찬물에 충분히 풀어준 후, 흐르는 찬물에서 한손으로 돌돌 돌리면서 다른 한 손의 손가락으로 문지르듯 돌려주며 빤다. 그리고 붓의 가운데를 종종 눌러주며 붓의 색을 빼준다. 붓을 잡아주는 부분 가까이까지 잘 빨아주는 게 좋다. 수채화 붓이라면 다른 색들이 섞여 숨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그 부분이 딱딱해지면 결국 붓의 수명이 줄어든다. 붓을 돌리면서 빨아주는 중간중간 가운데를 살짝 벌려서 중앙에 있는 털까지 골고루 씻기도록 한다. 충분히 빨린 것 같다면 잘 세워서 말려주는 게 좋다. 눕혀서 말리면 한쪽으로 붓이 쏠릴 수 있다. 충분히 마른 붓을 사용하면 처음과 비슷한 상태가 된다.
캘리그래피를 하면서 일주일에 한번 붓을 빨고 있다. 처음엔 아무 생각 없이 붓을 잘 빨았는데, 그게 오래된 습관에 따라 잘 빨고 있더라. 중학교 때까지는 회화반에서 활동했고 특기가 풍경 수채화였다. 좋지 않은 붓과 좋은 붓까지 골고루 빨아보고 망가지게도 했던 기억이 차츰 올라왔다. 무엇이든 해두면 몸이 기억하고 나도 모르게 잘하게 되는 부분이 있다. 일 년 가까이 캘리를 하신 분들도 붓을 제대로 빨지 못하는 걸 보니 나의 경험들이 나도 모르게 나를 돕고 있었구나 싶었다. 컴퓨터로 하는 작업들은 아무리 해도 정감이 가지 않는다. 이렇게 붓을 빨고 화선지를 고르고 이런 작업을 하기 위해 강습장으로 찾아가는 즐거움이 없다. 붓의 결을 따라 열심히 빨고 나니 마음이 안정되는 느낌도 갖게 된다. 즐겁다. 민화도 배워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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