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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100 - 100개의 글쓰기] 브라우니 한조각이 남편을 살렸다

uchonsuyeon 2019. 9. 11.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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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린 주말부부다. 남편은 원주에서 파견 나가 일하고 있다. 몇 개월에 한 번 서울 근무하다 다시 원주에 가서 일한다. 이번 추석은 원주에서 출발하기로 했다. 그래서 남편이 지난 주말에 짐을 싸 둔 트렁크를 하나 싣고 차를 가지고 갔다. 나는 어제(화요일) 아이 둘과 함께 저녁 기차로 원주로 오기로 했다. 5시 35분 기차를 예매해두고 시간을 계산했다. 최소 30분의 여유를 두고 시간을 맞췄다. 3시 20분에 아이들을 픽업하러 갔다. 4시에는 집에서 나가야 했기 때문이다. 어린이집에 도착하니 어린이집 앞에 둔 유모차가 홀딱 젖어있다. 웬만한 비가 와도 뚜껑만 덮어도 괜찮은데, 웬만한 비의 수준이 넘게 왔었나 보다. 하는 수 없이 아이들은 걷게 하고 집으로 향했다. 한참 걸어오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케이크 가게로 갔다. 치즈 수플레를 유독 좋아하는데, 기차 안에서 먹일 요량이었다. 나를 위해서도 뭔가 하나 살까 살펴보다가 2,000원짜리 작은 브라우니 조각을 하나 더 구매했다. 점원과 즐겁게 인사를 나누고 가게를 나서니 비가 더 오기 시작한다. 
 요즘 둘째는 ‘언니 카피어’다. 언니가 하는 행동을 작은 것 하나까지 따라 한다. 그래서 우산 든 언니를 어떻게든 따라 하려고 하나 힘과 키가 부족해서 그건 무리다. 결국 비를 다 맞게 된다. 우비는 또 죽어라 안 입는다. 어쩔 수 없이 유모차에 두 아이를 실었다. 앉지 말고 쪼그려 앉아 있으라는 말을 잘 따라 한다. 겨우 집에 도착해서 나갈 준비를 하는데, 유모차 때문에 엉덩이가 젖은 큰 따님이 옷을 갈아입겠다며 새 옷-치렁치렁한 드레스-을 가져와 입겠다고 생떼 부린다. 이미 나갈 시간 되었는데 말이다. 원래는 전철을 이용해 가려고 했다. 그런데 마침 비가 퍼붓기 시작한다. 하는 수없이 택시를 불렀다. 청량리까지 2만 원은 줘야 하겠지만 별수가 없다. 전철역까지 비 맞으며 아이들을 데려갈 자신이 없다. 가져가야 할 짐도 백팩까지 세 꾸러미가 된다. 택시가 오고 있는데, 둘째가 응가를 했다. 급하게 기저귀를 갈고 새바지로 갈아입히니 택시가 도착했다. 

 입담좋고 친절한 택시기사님이라 아이의 말을 잘 들어주신다. 그러나 택시 안에서만 한 시간이 넘어가고 계속 비가 퍼부으니 큰 아이는 언제 도착하냐고 계속 묻고 둘째는 활동량이 가장 높은 시간인지라 택시 안에서 치대며 왔다 갔다 장난을 치기 바쁘다. 아무래도 기차 시간이 안될듯해서 그다음 기차를 체크해보았다. 기사 아저씨가 도착하면 예매하라고 해서 좀 느긋했더니, 연단 자리가 없다. 짜증이 일기 시작했다. 핸드폰 배터리는 갑자기 팍팍 줄기 시작했다. 남편은 도착해야 할 역을 다른 걸 알려준다. Ktx를 타면 그 역에 도착하는데 좋단다. 짜증이 급상승했다. 진작 알려주지. 덕분에 기차를 몇 번 예매하고 취소하는 거냐.
 오랜 택시승차로 아저씨의 자식이 둘이고 큰 아이는 33살에 둘 다 결혼했다는 이야기와 나의 가족 이야기까지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오래간만에 진솔한 가족 이야기를 나눈 것 같다.
 동묘역부근을 가자 안 되겠다 싶어서 역 앞에 내렸다. 아직도 비가 온다. 원래 6호선을 타고 가다 동묘역에서 갈아타려고 했는데, 그곳에 드디어 1시간 반이 넘어서 도착했다. 가까운 입구로 들어서니 엄청난 깊이의 계단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픈형 계단이라 비도 저 아래까지 맞아야 했다. 큰 아이는 계단 공포증이 있다. 둘째는 모험심이 강하다. 큰 아이는 엄마 손잡자고 난리고, 둘째는 자기가 내려가겠다고 난리다. 나는 반복된 것-계단이나 무늬-을 보면 어지럼증을 느낌다. 나도 계단 공포증이 있는데, 엄마라는 입장이 되고 나니 아이들 안전이 우선이라 그런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계단을 내려오고 다 달랐다고 생각했는데, 또 계단이 있었다. 그리고 1호선으로 갈아타기 위해 또 계단을 타고 내려가야 했다. 겨우겨우 도착한 청량리역에서 바로 탈 수 있는 ktx를 예약하니 화장실 갈 여유도 없었다. 곧바로 승강장으로 내려갔다. ‘자유석’뿐이라 기차 입구 부근의 긴 줄에 동참했다. 자유석은 처음 타봤다. 자리가 있으면 앉고 없으면 서서 가야 한다고 ‘남편 놈’이 설명해줬다. 미리 기차역만 얘기해줬어도, 제대로 예약하고 갔을 텐데 말이다. 줄을 서 있으면서 오만가지 생각을 했다. 이대로 집으로 돌아가 추석 시댁은 안 가는 게 어떨까 남편 놈을 패줘야 하나 등등. 기차도 예상시간보다 늦게 도착했다. 둘째를 안고 큰 애를 잡고 기차안에 들어섰다. 다행히 둘이 앉을 수 있는 곳이 저 끝에 하나 있었다.
 아이들을 앉히니 그제서야 안도감이 밀려왔다. 줄을 서면서 느꼈던 배고픔이 극대화되었다. 일요일 저녁에 쪄둔 삶은 계란 두 개와 치즈 수플레 그리고 브라우니 한 조각이 있었다. 우선 아이들에게 치즈 수플레를 먹였다. 아이들은 엄청난 속도로 5센티가량 되는 수플레를 각각 먹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계란 한 개를 깠다. 큰아이는 계란 흰자를 상당히 좋아한다. 노른자는 내 차지가 될 테지. 수플레를 다 먹은 둘째가 계란을 달라고 손짓한다. 원래 삶은 건 잘 안 먹는 녀석이 얼마나 배고팠는지 계란을 열심히 먹기 시작한다.

 나는 그 사이 ‘3cm 가량의 브라우니 한조각’을 꺼냈다. 너무 배고프고 힘들어서 맛을 음미할 틈이 없었다. 자주 가는 이 케이크 가게의 케이크들은 밀도가 상당히 높다. 작은 것도 함부로 한입에 넣어 먹을 수 없다. 입안이 터질지도 모른다. 그런 느낌이다. 아까운 브라우니를 한입한입 베어 먹어 마지막 한 티끌까지 끝냈다. 

 그랬더니 마법이 일어났다. 밀려오는 온갖 짜증과 분노가 일시에 사그라들었다. 아, 이레서 화가 나면 달달한 걸 먹어야하는구나. 나는 화가 나면 매운 걸 찾는 편인데, 이 브라우니 한 조각이 좋은 경험을 주었다. 남편을 시작으로 나를 향하던 분노가 일시에 잠잠 해졌다. 그래도 남편에게 교훈(?)을 줘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안 그럼 나를 물로 보지 않겠는가!!!! 남은 분노들을 남편 만날때까지 잠시 보관하자.

 아이들에게 물과 음료까지 (나는 기차타기전에 커피를 사려고 계획하고 아이들 것들만 챙겨 왔었다.) 챙겨주고 나니 만송 역에 도착했다. 또 아이들을 이고 지고 기차역에 내렸다. 기차역에 내리자마자 풀냄새가 물씬 났다. 2차로 기분이 나아졌다. 나도 모르게 싱긋 웃고 있었다. 남편이 보면 안 되니까 침착함을 유지한 채 역 밖으로 남편을 찾아 나왔다. 나도 모르게 ‘얘들아 아빠 이놈 어딨는지 찾아보자’라는 말을 했다. 남편은 못 들었겠지. 남편이 앞에서 걸어 나와 아이들을 반겼다. 너무 화내고 이성을 잃으면 품위도 잃는 것이니 나는 화나는 지점에 대해 몇 마디 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브라우니 한 조각이 여봉을 살렸어!!! 내가 그 브라우니를 산건 신의 한 수 였지.’ 

 남편은 미안한 감이 들었는지, 비싼 갈비찜을 먹이고 아이들도 잘 케어하고 남편숙소로 오기 전에 산책을 하며 작은 봉투를 내밀었다. 그 안에 50만 원이 들어 있었다.

 나쁘지 않다. 하하하 
 다시 말하지만, 용돈이 아니라 브라우니 한조각이 남편을 살린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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