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my life/이런저런

[89/100 - 100개의 글쓰기] 향수 한 번 찍.

uchonsuyeon 2019. 9. 16. 16:22

 

 무향이 제일 좋지만, 좋아하는 향을 가볍게 뿌리는 것도 좋다. 어려서부터 비염이 심했고 코감기도 달고 살았기 때문에 강한 향이나 담배냄새를 가장 싫어했다. 그래서인지 은은한 향이 제일 좋다. 일종의 비누향 같은 느낌이 좋다. 성인이 되면 빨간 장미와 향수를 선물 받는다는데, 나는 장미 한 송이만 선배에게 받았던 것 같다. 그때는 성인식 날에 학교 선배가 후배에게 장미꽃 한 송이를 선물해주는 전통이 있었다. 원래 향수라는 말은 매력적이지만 성인식에 받는다고 하니 좀 더 매력적인 단어라고 생각했다.

 향수하면 두 단어가 생각난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이름 참 어렵다. 검색으로 찾았다)의 소설 <향수>와 메릴린 먼로의 샤넬 no.5 이다. 마리린 먼로가 '나는 잘 때 샤넬 no.5를 입는다'라고 해서 더 유명해졌다. 최고의 홍보가 아닐까. 이 말을 듣고 나도 샤넬 향수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갖게 되었다. 소설 향수도 꾀나 강렬해서 소설책과 영화 둘 다 기억에 남는다. 

 어릴 때, 문방구에서는 싸구려 향수들을 팔곤 했다. 앞서 말했듯 나는 향에 민감한 편이라 이런 것들을 선호하지 않았다. 성인이 되고 스윙댄스나 탱고를 추면서 향수를 하나 둘 모으기 시작했다. 그래 봤자 몇 개 되진 않았지만, 페레가모의 선플라워 향이나 incanto를 좋아했다. 샤넬 향수를 구입하게 된 건 호주에 있을 때다. 한국에서는 향수가 사치품에 들기 때문에 관세가 높아 비싸다. 그걸 호주에 가서 알았다. 한국의 반 가격 정도에 좋은 향수들을 구입할 수 있었다. 향수를 파는 곳도 많았고 종류도 많았다. 멜버른의 큰 백화점에 들렀을 때 판매하고 있던 샤넬 샹스라는 향수를 알게되었다. 한 번 뿌려보고 그 큰 백화점을 다 둘러본 후에도 남겨진 향이 좋아 큰 마음먹고 구입했었다. 한국 돈으로 대략 15만 원 정도 했다. 한 방울 뿌릴 때마다 천원이 날아가는 기분이 드는 비싼 향수다. 
 이 비싼 샤넬 향수를 참 좋아한다. 한 번만 뿌린 후 향이 날아갈수록 피부 깊숙이 남겨져 살 냄새와 섞이는 잔향이 참 좋다. 가장 좋은 점은 어떤 옷을 입든 구름 위에서 하이힐 신고 또각또각 걷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나를 조금 더 멋진 사람으로 착각하게 한다. 그래서 향수가 좋다. 특히 이 향이 좋다. 
 육아와 가정일로 우울함이 극에 달 했을 때 이 향이 잠시 휴식을 주었다. 잠시 딴 세상에 다녀온 기분을 느끼게 해 주니 여러 가지 스트레스가 날아갔다. 다른 향수들은 성인이 된 시조카에게 다 넘겼지만, 이 샤넬 샹스 향수는 간직하고 있다. 향수도 유통기한이 있다고 하지만, 이 향은 오래오래 간직하면서 즐길 듯하다. 

 오늘도 후줄근한 옷을 입고 향을 한 번 찍 뿌린 후 외출을 다녀왔다. 그것만으로 나는 귀한 곳으로 가서 귀하게 돌아온 기분이라 참 좋다. 참 좋아. 기분이 참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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