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79

[43/100 - 100개의 글쓰기] 장화를 신은 아이들

어려서부터 물놀이를 좋아했던 것 같다. 엄마는 만나기만 하면 하는 말이 있다. (5세 전) 깨끗이 씻어놓으면 사라져서 물웅덩이에 머리를 감고 ‘만세’를 불렀다는 에피소드다. 나는 산보다 물이 있는 바다나 강이 아직도 그렇게 좋다. 이렇게 비 오는 날도 상당히 좋아한다. 단, 바라보는 입장에서 말이다. 이런 날씨엔 유감이지만 유모차보다는 걸어서 아이들을 등원시키는게 낫다. 유모차를 비 오는 데 방치했더니 어디선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심해졌다. 어제는 비가 주룩주룩 오는 창문을 본 큰 딸이 어린이집 가기 싫다며 한참을 생때를 부렸다. ‘안 가면 화낸다’는 가벼운 협박에 겨우 소파 밖으로 나서 등원했다. 대신에 작은 보상으로 젤리슈즈 대신 장화를 신겨주었다. 두 아이가 장화를 신은 모습이 참 귀여웠다. 조금 더..

[42/100 - 100개의 글쓰기] 게으름은 인류를 발전시킨다

"게을러터져서 어디서 써먹니?" 라는 엄마의 말에 댓구하지 않았다. 게으른 것도 사실이고 어디에 써먹을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믿었다. 게으른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인류의 발전이 있다고 말이다. 한예로 보자. 리모컨은 왜 생겨났을까? 어릴 때 우리 집 텔레비전은 수동식 다이얼이었다. 대게의 집이 그랬다. 넓은 집도 아녔건만 아빠는 채널 돌리는 심부름을 시키셨다. 그러면 나는 꾸물꾸물 밑으로 기어가 발을 다이얼에 올리고 돌리곤 했다. 어떤 똑똑하고 게으른 학생은 긴 작대기에 효자손을 붙여서 채널을 바꿨다는 인증숏을 올렸었다. 아마 이 학생은 커서 큰 인물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리모컨을 만든 게 아닐까! 게으른 사람들은 한번 움직이기 매우 어렵다. 그래서 한번 일어서면 한꺼번에..

[41/100 - 100개의 글쓰기] 나의 삶의 태도, 미련함

어릴 때는 늘 마른 체질이었다. 어느 정도였다면, 별명이 ‘소말리아’였다. 당시 기아에 시달리는 소말리아 상황이 tv에 많이 나왔다. 요즘도 볼 수 있는 월드비전의 아프리카 기아 관련 광고와 흡사하다. 나는 팔다리가 가는 편이라 사람들은 실제보다 5kg 정도 마르게 보곤 했다. 중 1 때, 수업 도중 화장실을 가다(신경성 대장증후군이었다) 살짝 현기증으로 기우뚱을 한 적이 있는데, 그 사건 이후로 반 아이들 모두가 ‘정말 연약한 아이’라고 여겼다. 스스로는 매우 건강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운동에서 달리기도 중간이었고 그 외 종목에서도 주로 중간 이하였다. ‘운동을 왜 잘하지 못하지?’라는 의문을 품게 된 것도 중 1 무렵이였다. ‘이 세상에 노력으로 할 수 없는 게 많다면, 살고 싶지 않아!’라는 생각..

[40/100 - 100개의 글쓰기] 애플펜슬이 없어졌다.

약 두 달 전에는 리모컨이 없어졌다. 둘째는 유난히 리모컨을 좋아한다. 이것저것 버튼을 누르며 채널을 이상한 곳으로 인도해놓곤 했다. 그러다 리모컨이 사라졌다. 그리고 두 달이 지났건만 아무리 싹싹 찾아도 나타나질 않는다. 리모컨 대신 핸드폰 앱으로 겨우겨우 채널을 돌려보게 된 것도 고작 2주일밖에 안되었다. 리모컨이 없으니 한동안은 티븨를 켜고 끄고 밖에 못해서 덜 보긴 했지만, 구매해둔 티븨 프로그램을 못 보니 아쉬웠다. 그런데 오늘 아침엔 애플펜슬이 사라졌다. 어젯밤 큰 아이가 하얗고 긴 애플 펜슬을 가지고 놀길래 '그거 엄마한테 아주 귀중한 거라서, 가지고 놀다 없어지면 때지 때지 열 대는 맞아야 할 거야!'라고 으름장을 두었건만. 싱긋 웃던 딸은 아랑곳 않고 가지고 놀았었다. 별일 있겠냐는 생각..

[37/100 - 100개의 글쓰기] 우리는 어떤 '척'을 하는 사람인가?

내가 듣기 부끄러운 말은 '작가님'이라는 소리이다. 보통은 멍하게 살기 때문에 훅 들어오는 이런 호칭에 순간 당황한다. 처음 당황했던 시간은 3초 정도였고, 지금은 1초 정도로 줄이고 있다. 혹은 흘겨듣는다. 사실 작가라고 불리워도 된다. 스티커'북'도 냈었고, 그림 웹샵도 있던 '작가'가 맞다. 그러나 오랜 세월 회사에서 직함으로 불려 어색하다. 그리고 '작가'는 나보다는 조금 더 위대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칭호가 아닌가 생각하기에 아직도 부끄럽다. 가끔 데이트를 하는 은정언니는 유쾌하고 쾌활한 분이다. 대화를 하다보면 배울 점이 많다. 대화 상대방에게서 '장점을 스스로 발견하게 하는 힘'이 있다. 처음에는 어찌 이런 멋진 분이 나 같은 사람을 만나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주로 '멍~'한 상태로 나..

[36/100 - 100개의 글쓰기] 붓의 가격은 만원이었다.

학창 시절에 큰 딸이라 그런지, 부모님은 내가 알아서 잘한다고 생각하셨는지, 학교생활 등에 크게 관여 안 하셨다. 좋게 말하면 믿어주시는 거고, 나쁘게 말하면 무관심이었다. 나중에 내가 다 커서야 속마음을 말씀해주셨는데, 알아서 잘하길래 크게 신경 안 쓰셨다는 것이다. 어쨌건,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스스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걸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나때부터는 1가구 1자녀 정책이 있던 때라 내 친구들은 많게는 2자녀 적게는 1자녀가 제법 있었다. 그렇다 보니 그 친구들은 성적이 조금만 올라도 부모님의 선물이나 칭찬을 받았고 나는 그런 점에서 우리 부모님께 아쉬움이 컸다. 성적이 크게 올라도 칭찬 한두 마디 들었던 게 다였다. 중학교때였다. 그때 나는 용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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