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my life/이런저런 271

[88/100 - 100개의 글쓰기] 선택적 피곤

명절 마지막 날이다. 늦잠을 자려고 했는데, 아이들은 짤 없다. 아이들도 분명 피곤했으련만, 낮잠을 자서 그런지 밤잠은 칼같이 지킨다. 아니 따사로운 햇살 때문인가. 9월답지 않게 따사로운 햇살과 날씨 때문에 이른 아침이 눈부셨다. 몸은 맞은 듯아프고 한쪽 귀는 목감기와 함께 상태가 좋지 않다. 나의 감기가 아이들에게 옮았는지, 아이들의 목소리도 쉰소리가 난다. 다행히 일요일에 문을 여는 병원이 있어서 시간 맞춰 집을 나섰다. 산책 겸 걸어 도착한 병원은 마침 한산했다. 아이들과 나를 접수하고 나니 그제야 우르르 사람들이 몰려왔다. 조금만 늦었어도 한참 기다릴 뻔했다. 검진과 약 처방을 받고 약국에 갔다. 눈에 바로 띄는 ‘피로회복제’를 추가로 구매했다. 잠을 자면 되지 왜 그런 걸 사 먹냐는 남편의 구..

[87/100 - 100개의 글쓰기] 애매한 결정의 중앙선에 선다면

때로 본인이 의도치 않게 애매한 결정의 중앙선에 설 때가 있다. 나는 아무것도 안했는데, 양쪽에서 자신의 입장에서 서라고 강요한다. 예전의 나라면 저쪽에 가서 저쪽편들고 이쪽가서 이쪽편을 들며 양심의 가책을 느꼈을 것이다. 허니 지금은 나는 내편에 선다. 나는 둘다 놓아버릴 각오로 내 편에 선다. 왜 내가 감정과 시간을 갉아 먹으면서 양쪽편에 서주어야할까. 어차피 그 둘이 화해를 못한다면 나는 내편에 서서 나의 입장을 고수할 것이다. 끌려다니며 그들에게 맞추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결정하고나면 독한년소리를 듣겠지만 내 에너지 소비를 더이상 할 필요가 없다. 심지어 가족일지라도. 우리나라에서는 큰소리치는 사람이 이긴다. 나이가 들수록 그렇다. 나이 든 여자가 큰 소리를 점점 낸다는데 '미친년'소리 정도 듣..

[86/100 - 100개의 글쓰기] 몸이 정직해지기 시작했다

점점 몸이 정직해지고 있다. 피곤하면 바로 티가난다. 특히 오른쪽 눈은 피로 알림이 심하다. 조금만 피로해도 염증이 올라온다. 이번에 서울->원주->영암 순으로 2일간 이동을 했더니 오른쪽 코볼에 염증이 심하게 올라왔다. 인후통도 와서 무엇을 먹어도 맛을 못느끼고 있다. 허리도 아프고 피곤이 상당하다. 예전에 잠시 잠깐 눈만 붙여도 피로도가 내려갔다. 체력이 저질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그건 지금에 비하면 무척이나 건강했나보다. 나는 1=1의 몸수준이다. 남편말에 따르면 어머님 수준으로 체력이 안좋은 것같단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생존을 위해 운동해야한다는 말에 깊히 공감한다. 운동을 하루 하면 하루치의 에너지가 생긴다. 진짜 1=1의 몸이다. 아직도 기적이 생겨서 회춘을 바래본다. 아니면 약같은 걸 먹..

[85/100 - 100개의 글쓰기] 명절

어릴 때는 명절부심이 있었다. 친가는 굉장히 보수적으로 조상을 섬기는 집안이였고 조선시대스러운 곳이였다. 전통이라는 이름하에 모두가 바쁘게 준비를 하고 제사를 지냈다. 특히나 며느리들은 무척바빴다. 막내며느리인 우리 엄마는 서열이 높은 편이고 제일 멀리 살았기 때문에 늦게 왔다가 일찍 일어나는 편이였다. 여자입장으로써는 참 다행이지. 그러나 맏며느리 맏손주며느리는 참 안쓰렀다. 남자들은 밤까는 일과 손님 맞으며 술퍼마시는 일을 제외하고는 빈둥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새벽같이 일어나 밤늦도록 시중들고 청소하는 며느리들과 무척대조적이였다. 어려서부터 친가에 맡겨져 자란 나는 이런 문화가 익숙했다. 나는 막내아들의 큰딸이라 엄마뻘의 언니들이 나를 어여삐 여겨주었고 손끝하나 움직일 필요가 없었다. 그저 무료한 나..

[84/100 - 100개의 글쓰기] 브라우니 한조각이 남편을 살렸다

우린 주말부부다. 남편은 원주에서 파견 나가 일하고 있다. 몇 개월에 한 번 서울 근무하다 다시 원주에 가서 일한다. 이번 추석은 원주에서 출발하기로 했다. 그래서 남편이 지난 주말에 짐을 싸 둔 트렁크를 하나 싣고 차를 가지고 갔다. 나는 어제(화요일) 아이 둘과 함께 저녁 기차로 원주로 오기로 했다. 5시 35분 기차를 예매해두고 시간을 계산했다. 최소 30분의 여유를 두고 시간을 맞췄다. 3시 20분에 아이들을 픽업하러 갔다. 4시에는 집에서 나가야 했기 때문이다. 어린이집에 도착하니 어린이집 앞에 둔 유모차가 홀딱 젖어있다. 웬만한 비가 와도 뚜껑만 덮어도 괜찮은데, 웬만한 비의 수준이 넘게 왔었나 보다. 하는 수 없이 아이들은 걷게 하고 집으로 향했다. 한참 걸어오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케이크 가..

[83/100 - 100개의 글쓰기] 나의 한복

나는 아주 어려서부터 한복이 좋았다. 엄마가 한복 입고 찍은 사진을 보며 선망했다. 내가 기억하는 나의 첫 번째 한복은 내 몸에 딱 맞는 예쁜 옷이었다. 아마 7살이었던 것 같다. 미술학원 어린이집에 다녔는데, 어린이집에서 필요해서 엄마가 구입해줬었나 보다. 나는 그 한복을 아주 많이 좋아했다. 하루만 입어야 하는데 크리스마스 즈음부터 신정까지 내내 입었었다. 한복을 입고 일어나 크리스마스 선물을 풀어보던 게 생각난다. 그런데 아쉽게도 내가 금세 자라 버려서 그 한복은 그 일주일 가량이 전부였다. 중학 때 무슨 예절학교 같은 곳으로 단체 견학을 간 적이 있다. 예절학교이기에 한복이 필요했고 내 키는 160cm가 안되었는데 170cm가 되는 엄마의 한복을 가지고 갔다. 다들 자기 몸에 맞는 예쁜 '깨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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